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낯선 땅에서 교회를 그리워하며”
본문
저는 젊을 때부터 해외 집회를 가면 집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합니다. 두고 온 교회와 성도들이 그립기 때문이죠. 기왕에 낯선 지역으로 집회를 가면 그 지역의 명소나 관광지를 다녀올 수 있잖아요. 물론 집회 중에 설교와 목회에 도움이 될 만한 곳은 들려옵니다마는. 쉼을 목적으로 한 관광은 거의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새에덴교회는 제 영혼의 토포필리아(Topophilia)인 거죠. 제 땀과 눈물과 피를 바쳐 섬겨온 교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에 며칠 동안 일본에 가서 운동도 하고 온천욕을 하며 쉼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걸 안 주변의 교역자와 성도들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제발 목사님 며칠이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푹 쉬었다 오세요. 다 잊으시고 쉼을 얻고 오세요.” 그런 한마디 위로의 말씀이 제 마음에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는 날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공항에 도착하면 유송근 장로님의 존함을 쓴 여행사 직원이 나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명패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유송근 장로님이 얼마나 당황하셨겠습니까? 한국으로 급히 전화해 보니 일본 여행사와 의사소통이 잘 안 되었던 것 같아요. 한참 후에야 차가 왔는데 저희 일행을 태우러 온 게 아니라 다른 한국 분을 태우러 온 것입니다. 유송근 장로님은 최선을 다하셨는데 여행사들끼리 서로 소통을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찌 어찌해서 호텔에 도착했는데 솔직히 제 마음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숙소가 현대식 호텔이 아니라 지은 지 수십 년이 된 료칸(여관)인 것입니다. 천정도 없고 기둥이 그대로 있고 또 기둥 사이에 가로 세로의 지붕이 있고 서까래와 판자가 시커멓게 보이는 숙소였습니다. 온천 역시 냉탕이 없는 각자 방에 작은 욕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언제라도 벌레가 기어 나올 낌새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면 독거미 같은 벌레들이 이불 위와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첫날 저녁부터 “내가 어떻게 이곳에서 3일 동안 잠을 잘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교회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늦게서야 잠이 들었는데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비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송원석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목사님, 꼭 교회에 오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황급히 짐은 송종호 집사님께 맡기고 핸드폰과 여권만 가지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교회로 왔습니다. 급한 일을 해결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뿔싸 제 몸은 일본의 여관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숙소 밖을 나왔습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이미 숙소 밖을 나와서 여관 주변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 여관이 단일 건물로 되어 있지 않고 한 채, 한 채 목조주택으로 되어 있었는데요, 그 골목 사이를 걷다가, “아, 내가 지금 한국에 있는 게 아니구나. 마음은 교회에 있지만 몸은 낯선 거리를 헤매고 있네.,,” 이제는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구조가 비슷비슷해서 이웃집 여관 문을 열어봤습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이리저리 찾다가 그제야 제 숙소를 찾아와 “내가 교회에 보통 미쳐있는 게 아니구나...”
다음 날 저녁은 또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한국교회 원로 어르신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큰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소 목사가 한국에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빨리 귀국하소.” 그때 존 A. 샌포드가 쓴 ‘꿈 잊혀진 하나님의 언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귀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겨서 운동하는 중에 장로님께 애절하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장로님, 저 오늘은 교회를 꼭 가고 싶네요. 아무래도 제가 하루라도 빨리 교회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날 저녁엔 저만이라도 탑승할 비행기 좌석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유 장로님께서는 너무나 안절부절 하셨습니다. 동행했던 집사람까지도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피곤하고 잠 못 자는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기왕 왔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먼저 가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어요? 예정대로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그 순간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마음은 교회로 돌아가고 싶은데 어찌해야 하나 너무 부담감이 컸습니다. “하긴 내가 가버리면 유 장로님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 것이고 젊을 때 고생만 많이 시켰던 집사람의 말을 들어줘야 되겠구나. 그러나 감옥과 같은 이 숙소에서 어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까...” 이 사실을 알고 집사람이 자기 방과 바꿔 주겠다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습니다. 다음날은 폭우가 계속 내려서 운동도 못하고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과정이 참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저는 먼저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대로 유 장로님, 집사람과 고통을 끝까지 함께 하며 불평을 꾹 참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도 함께 하시죠. 이곳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죠. 그러나 익숙한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늘 서던 강단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로 찾아온 성도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제 영혼이 쉴 수 있는 집이었고 삶의 모든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새에덴교회를 향한 저의 그리움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제 영혼의 노스텔지어이고 거룩한 토포필리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