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우순태 목사가 말하는 ‘목회를 살리는 기획의 본질’
메시지·구조·번역으로 풀어낸 한국교회 기획론
본문
교계의기획자들, 우순태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
우순태 목사(KHN 코리아네이버스 사무총장)는 기획을 ‘일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공동체의 삶 속에 배치하는 신학적 작업으로 정의한다. 설교와 행정, 연합과 문화선교를 관통해 온 그의 기획 관점은 오늘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구조의 질문’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다음은 우순태 목사와 인터뷰한 전문이다.
Q1. 목사님은 평생을 목회자, 교단 총무, 연합운동가, 문화선교가로 살아오셨습니다. 이 모든 역할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기획자’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고 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행사 기획이란 하나님의 시간표를 공동체의 일정 안에 조심스럽게 배치하는 일입니다. 보다 실무적으로 말하면, 목회 기획은 말씀–사람–현장을 하나의 영적 흐름으로 엮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Q2. 2015년 광복 70주년 한국교회 평화통일기도회는 단순한 집회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 하나의 ‘사회적 메시지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행사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설계한 것은 프로그램이었습니까, 메시지였습니까?
우선은 메시지였습니다. 프로그램은 그 다음입니다.
기독교 기획에서 프로그램은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고, 메시지는 반드시 프로그램의 방향을 규정합니다.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프로그램은 많아지고 분주해지지만, 결국 공허해집니다. 메시지와 프로그램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프로그램이 메시지보다 앞서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먼저 정해지고, 이미 있는 행사에 말씀을 끼워 맞추게 됩니다. 감동은 있을 수 있으나 방향을 잃게 되고, 행사는 남아도 열매는 약해집니다.
둘째, 메시지가 프로그램보다 앞서면 출발점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가 됩니다. 모든 순서가 하나의 흐름을 가지게 되고, 불필요한 요소는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말씀이 남습니다.
메시지는 씨앗이고, 프로그램은 밭입니다. 씨앗이 없으면 아무리 밭을 잘 갈아도 아무것도 자라지 않습니다. 결국 기독교 행사 기획이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메시지가 길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는 작업입니다.
Q3. 교단 총무 시절, 부동산 실명제 문제 해결이나 대통합 과정은 단순한 행정 처리라기보다 ‘시스템 기획’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스스로를 관리자라고 보셨습니까, 설계자라고 보셨습니까?
저는 분명히 설계자라고 보았습니다.
교계 연합운동에서 대통합 과정은 행정 처리가 아니라 시스템 기획이며, 그 역할자는 관리자가 아니라 설계자입니다. 관리로 끝나는 순간, 통합은 곧 붕괴됩니다. 관리자는 합의된 것을 관리하지만, 설계자는 합의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만듭니다. 교계 연합에서 중요한 설계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대통합은 행정적 병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통이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질서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Q4. 목사님이 보시기에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부족한 인재는 설교자, 행정가, 기획자 중 누구라고 보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부족한 인재는 단연 기획자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설교자와 행정가는 많지만, 설교와 행정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리해 보면, 설교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정가는 정해진 것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담당합니다. 반면 기획자는 무엇을, 왜, 언제, 어떤 구조로 말하고 운영할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한국교회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는 익숙하지만, “왜 이 구조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인재가 가장 부족합니다. 설교자만 많으면 운동은 일어나지만 지속성은 약해집니다. 행정가만 많으면 조직은 유지되지만 생명력은 둔화됩니다. 기획자가 있을 때 설교는 방향을 얻고, 행정은 목적을 갖게 되며, 연합은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이 됩니다.
Q5. 많은 목회자들이 “나는 기획 체질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목사님은 기획력이 타고나는 것이라 보십니까, 훈련되는 것이라 보십니까?
기획력에는 일부 타고난 감각이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훈련되는 능력입니다. 특히 목회와 교계 현장에서 요구되는 기획력은 천부적 재능보다 훈련의 결과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첫째, 기획 감각은 타고날 수 있습니다.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핵심을 뽑아내며, 사람·시간·자원을 동시에 생각하는 감각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기획력’이 아니라 ‘기획 감각’에 가깝습니다.
둘째, 기획력이 훈련의 영역인 이유는 기획이 재능이 아니라 사고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훈련되고, 목회가 훈련되듯, 기획 역시 충분히 훈련될 수 있습니다.
Q6. 지금 한국교회는 행사와 집회, 프로그램은 많은데 ‘이 시대를 향한 설계’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목사님이 보시기에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기획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부흥입니까, 회복입니까, 구조 전환입니까?
저는 순서를 이렇게 봅니다. 구조 전환 → 회복 → 부흥
첫째, 구조 전환이 먼저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많은 것은 행사와 열심이지, 이 시대를 해석한 구조와 설계는 아닙니다. 산업화·성장기 교회 구조가 작동하던 사회·문화적 토양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의 부흥은 일시적 열기에 그치고, 오히려 소진을 낳게 됩니다. 지금 필요한 기획은 “무엇을 더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존재할 것인가”입니다.
둘째, 회복은 구조 위에서 가능합니다. 회복은 감정이 아니라 질서의 회복이며, 질서는 언제나 구조를 통해 옵니다.
셋째, 부흥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성경에서도 부흥은 언제나 회개와 질서, 말씀과 공동체 회복 뒤에 주어졌습니다. 구조와 정체성이 회복되면 부흥은 하나님의 결과로 따라옵니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기획해야 할 것은 사람을 모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 시대에 적응하고 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교회의 구조로의 전환입니다.
Q7. 문화선교와 그림 사역, 일반계시 선교까지 확장해 오신 것을 보면, 목사님은 복음을 ‘전달’하기보다 ‘번역’하려고 애써 오신 분처럼 보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 기획자들이 가장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앞으로 기획자들이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도 아니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이미 주어져 있고 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메시지의 부재가 아니라, 청중의 수용 구조가 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말을 듣지 않는 시대가 아니라, 기존의 언어로는 더 이상 공감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보이는 방식과 기술은 중요하지만 목표는 아닙니다. 핵심은 번역입니다. 번역이란 단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의미가 이 시대와 함께 숨 쉬도록 도구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래서 문화선교와 예술 사역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이고, 설득이 아니라 공명이며, 주장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믿으라 말하는가”보다 “그 믿음이 어떤 삶을 만들었는가”를 봅니다.
Q8. 30대 젊은 목회자나 사역자에게 “앞으로는 설교보다 기획이 중요해질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설교가 덜 중요해져서가 아니라, 설교만으로는 더 이상 청중에게 도달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기획은 설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가 들릴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구조입니다. 설교가 내용이라면, 기획은 그 내용이 삶 속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생태계입니다.
예수님은 설교자이기 이전에 삶의 동선과 관계를 설계하신 분이었고, 바울 역시 신학자이기 전에 도시와 문화를 읽은 기획자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30대 사역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설교가 약해질까 두려워하지 말고, 설교가 들릴 수 없는 구조에 갇힐까를 두려워하라. 설교는 여전히 교회의 심장이지만, 기획은 그 심장이 뛰게 하는 혈관입니다. 그러므로 기획자가 되라.
Q9. 목사님 인생을 돌아볼 때, “그때 이 기획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사역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획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돌이켜보면 제 사역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 기획은 박사학위 논문 작업이었습니다. 그 논문은 이후 제 목회와 공적 사역 전체를 설계하게 만든 출발점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추구하신 교회를 ‘축제공동체’로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교회는 영성만 지키는 공간이 아니라, 기쁨과 놀이, 공동체적 생명력이 회복되는 자리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축제를 속되다고 밀어내 종교성(제)만 남았고, 사회는 놀이(축)만 남기고 영성을 잃어버린 결과, 그 공백을 여가산업과 각종 대체문화가 채우게 되었습니다. 교회도 제만남고 사회도 축만 남는 반쪽이 되어 있는 현실을 온전한 축제(영원한 천국잔치)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설계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와 교회가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되는 목회를 기획하게 되었고, 그 방향성이 이후 교단 총무와 한국교계 연합운동 사무총장으로 섬길 때 실천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은퇴 후에도 같은 문제의식으로 KHN 코리아네이버스를 창립해,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를 연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대안적 세계 형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 사역을 관통하는 것은 늘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구조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고, 그 점에서 저는 평생 기획자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