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길과생명연구소' 설립기념세미나 개최
본문
양봉식 목사 "교회 내 이데올로기 갈등, 바람직하지 않아"
민경배·박명수·김철홍 박사 등 참여해 심층 논의
'길과생명연구소'(소장 양봉식 목사)가 지난 20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4층 소망홀에서 '한국교회에 스며든 사회주의와 열매'를 주제로 설립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현재 한국 사회와 교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데올로기 갈등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사회주의 사상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 신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자리가 됐다.

양봉식 소장(사진)은 인사말을 통해 "현재 한국의 상황이 자유당 시절만큼이나 혼란스럽고, 이데올로기 충돌로 인한 국민의 좌우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며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갈등이 한국교회 안에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가 좌우 이데올로기로 갈등을 빚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현재의 갈등에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좌익과 우익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소장은 특히 "의외로 교회가 사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이해하고 믿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의 일부가 사회주의에서 온 것임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주의를 따를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유물론을 바탕으로 하는 하나님을 거절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사회주의 침투 과정 조명
이날 세미나에서는 민경배 박사(연세대 명예교수) '한국교회에 스며든 사회 공산주의사상'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이어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가 '해방 후 용암포 사건의 재구성과 그 성격'을, 김철홍 박사(장신대 교수)가 '유대 기독교의 인간학과 경제 정치제도'를, 김상현 국대떡볶이 대표가 '한국교회의 3대 죄악'을 각각 발제했다.
세미나 개회예배에서 노곤채 목사(한국기독언론협회)의 사회로, 유영권 목사(빛과소금교회)의 설교, 윤세중 목사(개신교미래연합 사무총장)의 기도, 염안섭 목사(수동연세요양병원)의 축사가 있었다.
특히 이번 세미나에서는 '확증편향과 집단정체성을 통한 사회주의화', '기독교 인권관과 사회주의 젠더 담론의 충돌' 등을 다룬 부록 자료도 함께 제공됐다.

"일제보다 기독교 더 공격했다"...한국 공산주의 침투사의 진실
민경배 박사, 일제강점기 반기독교 투쟁의 구체적 실상 조명
민경배 박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 한국 공산주의자들이 일제 대신 기독교를 집중 공격했다는 "한국 현대사의 엄청난 캐리캐처"를 구체적 사례로 제시했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한국 공산주의
한국 공산주의는 1918년 4월 기독교인 이동휘가 러시아 하바로브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한 것이 출발점이다. 1922년 1월에는 기독교인 김규식이 여운형, 나용균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했다.
1920년 제2차 코민테른에서 박진순은 "옛날 종교로 통하던 조선을 공산주의 혁명성취의 오아시스로 바꾼다"고 선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텔리 중심의 확산과 지역 분포
제2공산당사건 재판기록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는 남조선 72명, 북조선 29명으로 남조선에 더 많이 분포했다. 일제 경찰 조사에서도 한국 지도급 공산주의자 550명 중 남조선이 300명, 북조선 45명, 외국 130명으로 집계됐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주로 "일본 유학생 출신 지주 등 부호의 자녀들"이었다. 1928년 제6차 코민테른에서는 "한국공산주의자 중 지식인이 많다 하류층과의 거리를 낮추라"는 지령이 내려질 정도였다.
이들은 특별한 복장(올백, 조끼있는 상의, 당꾸바지, 도리우찌 모자)으로 시대적 유행을 이끌며 메시아니즘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반종교 강령과 교회 공격
1921년 조선공산당 강령은 명시적으로 "종교는 미신"이라며 "종교박멸운동을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1925년 박헌영은 "교회는 자본주의사회를 지지함에 있어서 절호한 경찰기관"이라고 규정했다.
배성룡은 더 나아가 "기성종교는 너무나 마취적 미혹적 침략적"이라며 "금일의 종교는 회회교 가특력교 기독교 할 것 없이 다 영토를 침략하며 인간의 해방을 방해하는 강자의 별동대 약자정복의 사자"라고 공격했다.
조직적인 반기독교 활동
실제 반기독교 활동도 체계적으로 전개됐다. 1925년 10월 22일 경복궁과 YMCA에서 제2차 전국주일학교대회가 열릴 때, 한양청년동맹이 바로 그 앞길에서 반기독교대회를 개최했다.
1926년 2월 25일에는 김익두 목사가 간도 용정 중앙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 공산당원들이 철근으로 폭행하고 시위하여 예배를 못 보게 했다. 같은 해 5월 익산에서도 전북민중운동자연맹과 이리청년회가 김익두 목사 부흥회에 몰려들어 반기독교운동을 전개했다.
만주지역의 극단적 박해
만주지역에서는 더욱 극단적인 박해가 발생했다. 1925년 9월 길림성에서 동아기독교 파송 윤학영, 김이주, 박문기, 이창희가 순교했다. 1931년 길림에서 최태봉 외 7인이 순교했고, 1932년 간도 화첨자에서는 김영국 목사와 김영진이 공산당에게 살해당했다.
1932년 동만노회 보고서에는 "공산당과 비적의 불안으로 공포중에서 신음하며... 피살당한 교인이 4인이며 비적에게 잡혀간 교인이 10여명으로 무상한 고생을 당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33년에도 "공산당에게 예배당 충화당한 곳이 여러 곳이며 참살당한 사람이 25명"이라고 보고됐다.
해방 후에도 지속된 침투
해방 후에도 공산주의의 기독교 침투는 계속됐다. 1947년 2월 기독교도민주동맹이 조직되었는데, 위원장은 3.1독립선언 서명자이자 감리교 목사인 김창준, 총무는 한국 오순절교회 창시자 박성산 목사가 맡았다.
최문식 목사(평양신학교 34회)는 1946년 대구 10월 인민항쟁의 주역으로 활동했고, 이재복 목사는 남로당 특별공작 책임자로 제주 4.3사건과 여수 14연대 반란을 주도했다.
"이데올로기에 갇힌 관념의 산물"
민 교수는 "일제가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탄압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그 현장에서 우리를 도와주어 오던 미국과 미국 선교사들에게 오히려 매서운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며 이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관념의 세계 속에 살고 있고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해방 이후 그리고 6.25 이후에도 대한민국에, 더구나 교회 안에까지 신구교회 막론하고 때로 공개적으로 머리를 들고 있다"며 "민주 자유주의의 선도 주도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강연은 한국교회가 공산주의 침투의 역사적 경로와 수법을 정확히 파악하고, 복음적 정체성 확립을 통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해방 직후 한국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첫 무력충돌 '용암포사건'
"기독교부터 때려 부숴야" 공산측 선언, 기독교 발상지서 벌어진 신앙과 이념의 대립
한국 기독교의 발상지로 불리는 평북 압록강 유역에서 1945년 11월 18일 기독교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간 첫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가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공격했는지 보여주는 초기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박명수 서울신학대 명예교수는 세미나에서 "용암포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사회주의 세력이 기독교 신앙을 직접 공격한 사건"이라며 "이 지역이 한국 기독교 최초의 공동체가 시작된 곳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기독교 중심지에서 벌어진 충돌
평북 압록강유역은 한국 기독교의 발상지다. 의주상인들이 만주선교에 호응하면서 한반도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됐고, 1889년 언더우드가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의주 기독교가 시작됐다.
용천 지역의 기독교 영향력은 압도적이었다. 일제강점기 105인 사건에서 전체 기소자 123명 중 기독교인이 91명이었고, 그중 장로교인이 81명을 차지했다. 특히 용천노회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 군 단위로 만들어진 노회였다.
당시 용암포제일교회는 이기혁 목사를 중심으로 "해방과 더불어 복음으로 기독교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지역 우익 세력의 중심 역할을 했다.
"기독교부터 때려 부숴야 한다"
갈등은 조선민주당 용천군당 창당과정에서 촉발됐다. 외과의사 장원봉이 조만식과 협의해 11월 15일 양시에서 약 4,000명이 참석한 군당 결성식을 개최한 데 이어, 18일 용암포에서 좌우 합동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공산당 측 이용흡은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공격했다. 그는 "소련군이야말로 이 민족을 해방해준 진정한 친구"라고 주장한 뒤 "기독교는 부르주아의 주구이며, 지주들의 앞잡이니 우리의 과업은 기독교부터 때려 부숴야 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제일교회 지하실에는 이기혁이란 목사가 무기를 잔뜩 쌓아놓고, 소련군에 대항하여 우리를 학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짓 선전을 퍼뜨렸다.
기독교인 장로 순교와 교회 파괴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이 "제일교회 이기혁을 때려 죽이자"는 구호를 외치며 교회로 몰려갔다. 이들은 새로 지은 교회의 함석을 뜯어내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기물을 파괴했다.
19일 새벽에는 동양경금속 노동자와 불이농장 농민 약 2,500명이 몽둥이와 체인으로 무장하고 수산학교를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용암포제일교회 홍석황 장로가 학생들을 보호하려다 적위대에 의해 피살됐다. 그는 용암포사건의 유일한 순교자가 됐다.
기독교 국가 건설 vs 사회주의 혁명
조선민주당 측은 ▲만주 피란민에 대한 차별적 대우 ▲적산의 공산당 독점 ▲용암포수산학교 접수의 부당성 등을 비판하며 "소련 깃발 아래가 아닌 대한 깃발 아래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11월 29일 이 사건을 "반동분자들의 책동"으로 규정하며 "반동적인 한국민주당의 사촉하에 고려청년회와 학생동지회 가담자들이 공산당과 대중들을 이탈시킬 목적으로 건국촉성강연회를 벌였다"고 해석했다.
박명수 교수는 "용암포사건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민주국가 건설을 꿈꾸던 세력과 사회주의 혁명을 추진하던 세력 간의 근본적 가치관 충돌"이라며 "해방 직후 사회주의가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적대시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며칠 후 신의주학생의거로 이어지며 북한 지역 기독교 탄압의 시발점이 됐다.

"한국교회에 침투한 사회주의 사상, 금욕주의가 통로"
김철홍 교수 "신학적 좌파가 정치적 좌파 양산"
한국교회 내 사회주의 사상 침투 경로와 그 해악을 분석하는 세미나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철홍 교수(신약학)가 "가톨릭의 금욕주의가 한국 개신교에 스며들어 사회주의 사상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욕주의, 사회주의 사상의 신학적 뿌리
김 교수는 가톨릭의 금욕주의와 맑스주의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욕망을 악한 것으로 보고 이를 억압하거나 제거하려는 사고는 종교적으로는 금욕주의,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가 된다"며 "종교적 금욕주의는 정치적으로 번역하면 공산주의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개신교 내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고신 교단 장로인 손봉호 교수가 '2012 청년사역자 세미나'에서 "한국교회가 금욕을 통해 스스로 가난해지는 길을 가야 한다"며 "돈을 미워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손봉호 교수는 자신이 가톨릭교회의 오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한 채, 금욕주의가 복음의 핵심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방신학의 한국 개신교 침투
김 교수는 해방신학이 가톨릭교회에서 생겨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가톨릭 신부들이 정치적으로 좌파가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신비한 현상이 아니다. 종교적 금욕주의는 정치적으로 번역하면 공산주의 이념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금욕주의적 가톨릭 신학이 현재 한국 개신교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금욕주의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개신교 지도자들이 있어 신학적 좌파는 정치적 좌파와 일맥상통한다"며 "이것이 현재 한국 기독교가 좌파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지 않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사회주의 찬양하는 기독교 인사들
김 교수는 제19-21대 국회의원이었으며 제50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도종환 시인의 평양 방문기를 예로 들었다. 도종환은 평양의 회색 도시를 "스님의 승복 빛"이라며 서울의 화려함을 "욕망과 타락과 탐욕이 뒤섞인 빛"이라고 대비시켰다. 김 교수는 "이는 금욕주의에 연결시키려는 의도로, 자본주의는 비도덕적이고 공산주의는 도덕적인 제도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독교적 대안: 욕망의 제도적 통제
김 교수는 유대-기독교의 올바른 인간 이해를 제시했다. 바울의 로마서 7장을 인용하며 인간 내면에는 '율법을 행하려는 나'와 '욕망이라는 세력'이 대립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욕망 자체가 죄가 아니라 율법의 범위를 벗어난 욕망 추구가 죄"라고 강조했다.
해결책으로는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주의가 아닌 제도적 통제를 통한 시장경제를 제시했다. "시장경제제도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법적 규제를 통해 순기능이 발휘되도록 설계된 제도"라며 "종교개혁을 통해 루터의 결혼과 칼빈의 소명론으로 확립된 기독교적 원리"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는 금욕주의라는 잘못된 신학에서 벗어나 성경적 인간 이해를 회복해야 한다"며 "그래야 사회주의 사상의 침투를 막고 올바른 사회 질서를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교회의 3대 죄악, 그리고 회복의 길
진화론·공산주의·정치비판 금지는 우상숭배인가… 김상현 대표의 발언이 던진 충격
2025년 6월, ‘한국교회에 스며든 사회주의 사상과 열매’라는 주제로 개최된 길과생명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국대떡볶이 김상현 대표가 발제자로 나섰다. 기업가이자 반공 운동가,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그는 “한국 교회의 3대 죄악”이라는 도발적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종교적 문제 제기를 넘어, 한국 교회와 사회 전체를 향한 심각한 경고로 읽혔다. 그가 지목한 세 가지 죄악은 다음과 같다.
▲진화론이 우상숭배임을 가르치지 않는 죄 ▲공산주의가 우상숭배임을 가르치지 않는 죄
▲교회가 정치비판을 금지하는 죄
“진화론은 마귀의 사상”
김상현 대표는 35세까지 교회를 혐오하던 진화론자였다. 사회주의자이자 동성애·낙태 옹호자였으며, 교회는 “천국과 지옥으로 장사하는 곳”이라 비난했다. 그런 그가 완전히 바뀐 계기는 ‘창조과학 선교회’ 이재만 선교사의 9박 10일 미국 탐방이었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성경의 권위를 확신하게 되었고, 이후 삶의 세계관이 완전히 전환되었다.
그는 진화론이 단순한 과학 이론이 아니라, 창세기의 6일 창조를 믿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전략적 공격”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성경의 표현을 과학과 타협해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성경 전체의 역사성과 권위를 무너뜨린다고 본다.
그는 많은 목회자들이 창세기의 하루를 “수십억 년”으로 해석하는 것을 보며 통곡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는 결국 하나님의 창조를 신화화하거나 알레고리화하는 행위로 연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창세기 1장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는 반복 구절이 24시간 하루를 뜻한다고 강조하며,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출발점이라고 역설했다.
“공산주의는 우상숭배다”
김 대표는 공산주의를 단순한 정치사상이 아닌,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인본주의적 우상숭배”로 본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나 김일성주의뿐 아니라, 서점의 베스트셀러 대부분이 공산주의적 가치관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상대주의, 종교다원주의, 인간 중심의 인문학적 흐름들이 그것이다.
그는 특히 “공산주의는 우상숭배다”라는 명제를 교회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스스로 만든 이 문장을 반복해서 전파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회가 공산주의의 본질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성도들이 공산주의적 사상이나 정당에 아무런 비판 없이 표를 던지는 현실을 우려했다.
김대표는 “공산주의자도 교회에 와야 한다”고 말하며, 그들이 “자신의 사상이 우상숭배임을 교회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사상 분별을 하지 않고, 세속과 타협할 때 결국 교회는 사회를 선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비판은 성도의 사명”
김 대표는 세 번째 죄악을 “가장 악질적인 죄악”이라고 규정한다.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거나 회피하게 만드는 목회자들의 논리를 그는 단호히 반박한다. “복음 전도에 방해된다”, “십자가와 부활만 전하자”, “정치 이야기하면 적이 생긴다”는 식의 논리는, 오히려 사탄이 퍼뜨린 거짓말이라고 본다.
그는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성경을 가진 크리스천”이라며, 차별금지법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도 성경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가 침묵하고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목 아래 회피할 경우, 성경은 결국 범법서적이 되고 복음은 묵살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교회가 정치에 침묵하는 태도가,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하고 교회 안에서는 예수만 말하라”던 일본 순사와 같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 교회 목회자들 대부분이 그런 일본 순사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주기철 목사가 교단에서 파면된 역사를 상기시키며, 오늘날 교회도 여전히 ‘분탕질’이라며 진리를 전하는 자를 내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성도는 정치적 존재다”
김 대표는 정치가 단순히 정당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문화·언론 등 사회 전반을 이끄는 ‘가치관 전쟁’의 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성도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성경적 가치관을 전면에 드러내야 하며, 그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교회가 침묵을 선택하면 마귀는 환호할 것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교회 안에만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교회가 반공운동이나 창조신앙 교육을 통해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할 때, 오히려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회심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례도 들었다.
“지도자의 영적 분별이 위기다”
김 대표는 한국 교회의 구조적 문제로, 지도자들의 잘못된 현실 인식을 지적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의 70~80%가 보수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 비율이 좌파적이거나 정치에 극도로 무지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교회의 안정적 운영이 성도의 구원보다 우선되는 경향도 강하게 비판했다.
“구체적 대안이 있다” – 황성준·노희성 강사 추천
김 대표는 현재 자신이 출석 중인 온누리교회 세계관 강사인 황성준 위원과 노희성 소장의 강의를 필수 교육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황성준 위원은 전 골수 좌파였던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 언론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한 후 공산주의와 신앙의 충돌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노희성 소장은 목회자 사모이자 창조과학과 인본주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는 ‘예스티칭연구소’ 대표로, 신학적 기초와 교육 콘텐츠 제공이 가능하다는 평이다.
그는 이들의 강의 영상을 유튜브 링크로 공유하거나 리더십 교육의 필수 콘텐츠로 삼아야 하며, 교회 전체에 이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깨어날 때, 나라가 살아난다”
김 대표는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공인이 목회자”라고 말하며, 교회가 세상의 정체성을 분별하고 바르게 가르칠 책무가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한 사람의 영혼이 변화될 때 나라가 바뀐다며, 진리의 길은 언제나 소수의 길이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계속 외쳐야 한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광주에서 본 “광주를 사랑합니다. 공산주의에 속지 마세요”라는 피켓 문구를 인용하며, 잘못된 지도자들에 의해 시민들이 속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진정한 변화는 교회의 각성과 진리 수호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믿는다.
김상현 대표의 발제는 단순한 개인적 신앙 고백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현 주소에 대한 고발장이자 회복을 위한 요청서다. 그의 발언은 분명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모든 청중이 동의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우상숭배로서의 진화론과 공산주의’, ‘정치비판 금지라는 사악한 침묵’은, 신앙과 교회의 공공성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그 질문에 어떤 응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