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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음 전도자, 조용기 원로목사 별세
6.25전쟁 후 절망에 빠진 한국에 희망의 복음 전하며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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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우 기자 작성일21-09-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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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부터 뇌출혈로 쓰러진 뒤 입원 치료…14일 결국 하나님 품으로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한국 교회 부흥과 세계 교회 성장을 주도하며 개신교 선교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가 14일 아침 7시 13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조용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며 올 2월에는 부인 고 김성혜 전 한세대 총장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유족으로는 희준, 민제, 승제 세 아들이 남았다.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이며 서울대병원에서는 빈소를 마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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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환소예배(장례예배)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열리며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설교한다.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가 맡았다. 하관예배는 18일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열린다.

1958년 5월 18일 고 최자실 목사(1989년 11월 9일 소천)와 함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한 조용기 목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바탕으로 ‘희망의 신학’을 외쳤으며, 폭발적인 교회 성장으로 1992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교인수 70만 명을 넘어서며 세계 최대의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조용기 목사는 1970년대부터 외국의 주요 언론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 비결’을 소개하였고, 사회적·신앙적·행정적·기술적 요인 등 다양한 성장 요인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는 조용기 목사의 리더십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용기’라는 이름은 20세기 동안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인이기도 했다.


조용기 목사는 1936년 2월 14일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부친 조두천 장로와 모친 김복선 권사의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한학과 전통적인 종교문화에 익숙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이 이어지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부친이 낙선한 뒤로는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곧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부산공고에 입학했으며, 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대에서 학교장과 미군 부대장 사이의 통역을 맡으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뒤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Assemblies of God)’ 소속 켄 타이스(Kenneth Tice) 선교사를 만나 집회 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고 폐결핵이 치유되는 신유의 경험을 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1956년 9월, 20세 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하여 후에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가 되는 최자실 목사와 만났다.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 18일 천막 교회를 개척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작이었다.

그 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 알려졌고, 1973년 9월 제10차 세계 오순절 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아시아 국가가 주최한 첫 오순절 세계 대회였다.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 뒤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1979년에 10만 명, 1981년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1976년에는 세계교회성장기구 곧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를 설립해 세계 교회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는데 당시 세계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의 대부분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용기 목사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에서 대규모 성회를 인도하고 강력한 성령운동이 전개됐다. 구소련의 붕괴 후인 1992년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성회를 가졌고, 1997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가진 성회에서는 150만 명이 운집, 두 나라에서 모두 개신교 사상 최대의 집회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하여 조 목사는 1975년부터 2019년까지 71개국에서 최소 370차례 부흥회를 인도했고, 비행 여정을 보면 지구를 120바퀴 이동한 셈이었다. 

조 목사는 국내에서 민족복음화운동에도 헌신하며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다니며 성회를 인도했다. 특히 사회 구원을 위해 1988년에는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해 기독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으며,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재 굿피플)을 세웠다. 또 국내 및 해외에서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복지 등의 증진에 앞장섰으며 그 공로로 1996년 ‘대통령 표창’(홀트학교 건립기금 및 장애아동 복지사업)을 수상했다. 또 1994년에는 대한적십자사부터 ‘적십자헌혈유공자 금장’, 1996년에는 심장병어린이 무료시술 지원 및 소년소녀가장 돕기 헌신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보건복지부)’을 받았다. 2005년에 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을 수상하고, 2007년 미연방의회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캄보디아 정부가 주는 훈장을 받았다.

조용기 목사는 저술가로서도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4차원의 영적세계> 등 다수의 저서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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