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한장총 2022 한국장로교 정체성 세미나 개최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과 예배회복’이란 주제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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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한영훈 목사, 이하 한장총)가 22일 <2022년 한장총 한국장로교 정체성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과 예배회복’이란 주제로 열린 세미나는 우리나라 기독교인 70%가 장로교인으로 장로교란 무엇인지, 장로교가 왜 중요한지, 장로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한영훈 대표회장은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되어 개혁자들의 정신과 전통에서 멀어진 우리 한국장로교회의 실상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장로교회로서 정체성을 회복하여 위기에 처한 한국장로교회가 회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21세기 한국교회 목회자 위기 극복을 위한 고찰: 16세기 제네바 교회의 목회자 선발과 훈련에서 배우는 교훈’에 대해 박경수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가, 1884~1934년 초기 한국장로교 선교사와 목회자의 신앙을 고찰하며 ‘한국장로교 신앙의 정체성’을 박용규 교수(총신대 신대원 명예)가 현장에서 발제했고, ‘공예배의 방향: 칼빈과 개혁신학의 성경적 입장에서 본 한국교회 예배개혁의 과제’에 대해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영상으로 발제를 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박경수 교수는 “개신교가 처음 출발했던 당시에 개신교의 중심지였던 제네바에서는 목회자가 되려면 성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생활이 거룩하고 순전해야 했다”며 “하나님으로부터 내적 소명을 받은 사람 중에서 교리와 생활의 외적 검증을 거친 사람만이 목회자가 될 수 있었다”고 목회자의 자질을 점검했다.
이어 “목회자를 세울 때에는 제네바 목사회와 시의회와 전체 성도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했고, 기도와 안수와 선서를 통해 비로소 적법한 목회자로 선발될 수 있었다”며 “과연 한국교회는 어떤 사람을 목회자로 선발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또한 “목회는 홀로 잘할 수가 없다. 지금은 한국교회 안에 공동체성의 회복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며 “제네바에서처럼 목회자들이 규칙적으로 자주 만나 함께 성경을 연구하고 목양에 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그 유익은 대단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지금의 한국교회와 사회는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철저한 목회자를 요구하고 있다”며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믿을만한 목회자를 양성할 때 비로소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발제에 나선 박용규 교수는 ‘한국장로교 신앙의 정체성’을 조명하며 1907년 독노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한 ‘12신조’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12신조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비해 교회론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성도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교회 생활의 안내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를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며 “12신조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칼빈주의 장로교의 신앙고백 전통을 반영하는 신앙고백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12신조는 △성경 △하나님 △삼위일체 △창조와 섭리 △인류창조 △범죄와 형벌 △예수의 구원 △성령 △선택과 예정 △성례 △신자의 본분 △심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 교수는 “한국장로교회가 12신조를 채택한지 115년이 됐다. 그동안 장로교회가 신학적 색깔을 달리하며 여러 교단으로 나뉘었고, 각 교단이 독자적인 신앙고백을 채택했지만 12신조는 여전히 한국장로교회 안에 소중한 신앙고백으로 자리잡았다”고 피력했다.
이어 장로교의 연합정신에 대해 박 교수는 소개했다. 그는 “한국 첫 50년 동안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은 ‘장로교’, ‘장로회주의’를 매우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고 한국선교를 진행했다”며 “가장 장로교적인 것이 가장 칼빈주의적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들은 각 선교회별로 한국선교를 진행하지 않고 출신국이 다르면서도 1893년 장로교연합공의회를 결성하여 연합으로 진행했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장로교라는 정체성을 가졌지만 교파주의나 교단주의에 함몰되지 않았고, 장로교공의회를 통해 함께 한국선교의 방향을 모색했으며, 연합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