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911수색구조단 이강우 회장, 튀르키예 현장까지 다녀와
전 세계 재난현장 누비며, 목숨 내건 사투에서 크리스천 삶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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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총연합회 재해재난구호위원장에 최근 임명돼
전 세계 재난현장을 누비는, 911S&RT(이하 911수색구조단) 회장 이강우 장로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의 재해재난구호위원장에 최근 임명됐다.
생명을 위협하는 곳을 찾아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임재를 증명하는 믿음의 크리스천의 삶을 살고 있는 이강우 장로는 평생을 소외된 이들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남겨진 자의 희망을 지켜주며 살아왔다.
이 장로는 지난 2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튀르키예 대지진 현장에도 다녀왔다. 단 한시도 쉼 없는 수색과 구조를 위해 무너진 건물 사이를 누비며, 목숨을 내건 사투 끝에 3명의 실종자를 찾게 됐다.
다시 한 번 ‘911 수색구조단’의 명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이강우 장로를 만나 이번 튀르키예 재난 현장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철학,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의 간증을 들었봤다.
△ 먼저 튀르키예 구호를 위해 출발부터 매우 난관이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가?
: 난관 정도가 아니었다. 사실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2월 6일 튀르키예에 7.8 강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우리 대원들이 한 곳에 모이기는 했는데 도저히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당장 돈이 없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1억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장비는 고사하고 당장 튀르키예로 갈 비행기 삯도 없는 상황이었다.
방법이 없으니, 교회에 가서 기도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참 기도를 못하는 사람인데,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며, 아는 목사님들께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 그런 상황에 어떻게 간 것인가?
정말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아무 방법도 없고, 주변의 후원도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 주한터키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911수색구조단이 지난 2011년 튀르키예(당시 터키) 반 지역 지진 발생 당시 3명의 실종자를 발굴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당시 튀르키예 전역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 온 민간 구조단이 전 세계 소방대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언론들이 앞다퉈 대서특필을 할 정도였다.
이번에 튀르키예 대지진이 발생하자, 튀르키예 소방본부에 우리를 기억하는 대원이 여럿 있었다. 이들이 입을 모아 경험 많고, 실력 좋은 911수색구조단을 불러와야 한다고 상부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한터키대사관이 수소문 끝에 우리에 연락을 해왔다.
튀르키예 정부에서 구호를 가기 위한 비행기, 현지 버스, 숙소 등 모든 지원을 해줬다. 여기에 공익 소방에도 해주지 않은 헬기 지원까지 우리를 위해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당장 출발해달라는 것이다.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던 것은 2월 10일, 우리가 출발해야 하는 것은 다음 날인 11일이었다.
준비 시간이 24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 온 대원들이 전국을 누비며 장비를 구했다. 구조에 있어 기본은 생존자 수색을 위한 열 감지기, 콘크리트 절단기, 지렛대, 발전기 정도다. 대원들은 새벽에 곤히 자고 있는 장비 전문점 대표를 깨워 장비를 공수해 왔다. 심지어 발전기는 강원도 원주까지 가서 사 올 정도였다.
△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상황이다. 그렇게 도착한 튀르키예 상황은 어땠나?
그간 전 세계 수많은 재난 현장을 가봤지만, 이번 튀르키예 참사는 특히 심했다. 도로는 완전히 무너지고 전기가 끊어져 온 동네가 암흑이었다. 무엇보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이 파괴된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우리가 간 곳이 튀르키예 아다나라는 지역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쉴 틈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야 할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다.
△ 그곳에서 실종자 3명을 찾았다고 들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우리가 도착한 현장은 매우 위험했다. 아파트가 옆으로 쓰러지며, 겹겹이 쌓인 상황이라 조그마한 충격에도 2차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긴박했다. 현지인들의 요청에 첫날 6시간 넘는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워낙 위험한 탓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이튿날이 되어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진입 가능한 지역을 찾았다. 그리고 대원 한 명이 아주 작은 틈을 발견했고, 그곳에 진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노력해 진입로를 확장시키고 조심스레 진입을 시도했다. 고개조차 들 수 없는 틈을 체격이 작은 대원이 들어갔지만 무전기가 되지 않아 덜컹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기도했고 한참 후 기어서 간 끝에 대원의 무전이 거기서 사상자 3명을 발견 한 것이었다.
△ 발견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가?
아이 둘을 엄마가 끌어안고 있었다. 지진이 터지자 엄마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 모든 대원이 눈물을 흘리며,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아이들의 아빠가 인근에 있었지만 현장은 위험한 곳이어서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조그만 충격에도 또 다른 붕괴로 이어지는 현장에서 현장 소식을 알리고, 일단 최대한 진정시키고, 현장에 올라오게 했다. 시신을 찾아드렸지만, 오열하는 아이들의 아빠를 보며 오히려 더 빨리 구해내지 못한 우리를 원망하게 되더라.
그리고 우리가 시신을 찾은 후 튀르키예 정부가 현지에서 활동 중인 모든 국가 구조대에게 더 이상 구조를 못하도록 정부 명령이 내려왔던 것을 보며, 이날 우리가 3분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면 하는 아찔함을 떠올렸다.
△ 구조활동이 참 위험하고,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이번에 출동한 우리 대원이 총 12명인데, 엄청난 베테랑들이다. 구조는 단순히 인원이 많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상황 판단을 함에 있어 연륜과 경험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리고 안전에 대한 충분한 지식, 장비 이해도가 구조의 성공을 좌우한다.
사실 재난 현장에는 전 세계에서 정부 소방 구조대, 민간 구조대들이 수만 명이 몰리는데, 이 중 80% 가까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맴돌다만 간다. 튀르키예 정부에서 우리를 직접 부른 것 역시, 바로 우리의 경험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 그간 출동한 재난 현장은 몇 군데나 되나?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지만 중국 쓰촨성, 멕시코, 튀르키예, 필리핀,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 20여 개국 이상을 출동했던 것 같다. 재난 소식이 터지면, 우리 대원들은 무조건 짐부터 싸고 일단 사무실에 모이는 게 일상이다.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만사를 제쳐놓고 출동 준비에 올인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멕시코다. 멕시코 지진 당시 멕시코 현지 구조단이 우리의 지시를 잘 따라줬다. 구조 지점부터 방법, 장비 활용까지 잘 따라준 결과, 300여 명의 매몰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매번 지원을 받아 나가야 하니, 고마운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이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사역을 인정해 주시고 늘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다. 특히 순복음부천중앙교회 김경문 목사님은 우리 911수색구조단의 가장 큰 후원자다. 매번 우리가 출국할 때면 공항으로 마중 나와 기도해 주시고 활동비도 주시는 분이다. 여기에 국제라이온스 354- A 지구 김영운 총재의 긴급 재정 지원과 각 클럽에서 항상 위기 때마다 우리를 도와주고 계신다.
과거 독립운동도 전면에서 싸우는 투사들만큼이나 뒤에서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숨은 조력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지 않았나? 구호도 마찬가지다. 절대 선한 조력자들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조금 아쉬운 것은 한국교회들의 재난을 당한 나라에 많은 후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번 튀르키예 지진을 접하면서 우리 구조단의 경우 현장에 바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것은 비행깃값 등 현지 투입에 필요한 재정이다, 재난은 항상 잃어나게 마련이고 한국교회가 선교를 위해서라면 가장 시급한 것이 우리와 같이 구조대가 현지에 들어갈 수 있는 재정 지원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 구호에 대한 남다른 신념이 있으신 것 같다. 계기가 있나?
사실 내가 젊은 시절 많이 방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처음 나간 교회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설교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듣고 나서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더라.
곧바로 집을 팔아서 구급차 5대를 샀다. 당시 주변에는 연탄가스로 인해 죽는 사람이 허다했는데, 이들을 살리기 위한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우리나라에 인명 구조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사람이다. 당시에는 구급차는 물론이고, 소방도 없었다. 내가 이 일을 3~4년 하고 나니까 소방이 생겼다. 현재까지도 소방 구급차가 환자들을 무료로 태우는 것도 어찌 보면 내 영향이다.
이번에도 튀르키예 소식을 접하고, 구호를 못 간다고 생각하니까 막막하더라. 지금은 다른 거 없다. 그저 하나님께서 내가 죽기까지 이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시기만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