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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미래목회포럼 ‘애국가와 나라 사랑’ 주제로 정기포럼 열어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5-05-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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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영 대표 애국가를 통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고자

이상대 이사장 애국가는 세대와 이념, 갈등 넘어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도구

미래목회포럼(대표 황덕영 목사) 5월 정기포럼을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셔널클럽에서 애국가와 나라 사랑: 애국가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라는 주제로 열었다.

고석찬 목사(대전중앙교회/중앙위원)의 사회로 시작하여 이규호 목사(큰은혜교회/중앙위원)의 기도 대표 황덕영 목사(새중앙교회)가 인사말을 전했다.

황덕영 목사는 오늘 우리는 애국가를 통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고자 한다애국가에는 하나님만이 대한민국의 독립과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애국가를 많이 부를수록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애국가를 통해 나라 사랑 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분열된 마음이 하나로 통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사장 이상대 목사(서광교회)는 환영사에서 애국가는 세대와 이념, 갈등을 넘어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도구라며 애국가를 부르며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것처럼, 우리도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고 민족의 반목과 갈등도 치유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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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목사 독립·평화·화해 정신으로 국민대통합 이루자강조 

첫 발제자로 나선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고문)가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독립과 평화, 화해 정신을 통한 국민 대통합을 역설했다. 이 목사는 광복을 하나님의 섭리 속 구속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며, 분열된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화해자 역할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1945년 광복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주어진 선물이라 정의했다. 3.1운동은 구속사적 전환의 서막이었으며,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교회가 사회구원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본질적으로 화해와 용서의 신앙이라며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정의가 만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진정한 화해는 고통의 기억 위에 사랑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목사는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로 공동체 해체를 지목하며, “교회는 하나 됨과 평화,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통합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라며 교회가 사랑과 용서로 하나 됨을 선포하고 갈등을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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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헌수 총장, 안익태의 기독교 신앙, ‘애국가작곡 원천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숭실사이버대학교 한헌수 총장이 안익태의 기독교 신앙과 애국가 작곡 배경을 조명했다. 한 총장은 안익태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애국심과 결합해 대한민국 애국가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며, 최근 제기된 친일·친나치 논란을 반박했다.

안익태는 1906년 평양 출생으로, 6살 때 교회에서 첫 풍금과 서양 악보를 접했다. 한 총장은 안익태는 교회에서 처음 음악을 만나 기독교 신앙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3.1운동 관련 활동으로 숭실중학교에서 퇴교당했으나, 선교사 도움으로 일본 유학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3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서 안익태는 처음 애국가 가사를 접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가사에 감동받았으나, 영국 민요 선율에 가슴 아파하며 1935년 현재의 애국가를 작곡했다.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1943년 동양인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했다.

한 총장은 “‘에키타이 안이란 표기는 안익태의 의지가 아닌 일본인의 발음 한계라며, “창씨개명한 적이 없고 오직 조선 이름으로 활동했다고 강조했다. ‘만주 축전곡관련 친일 의혹에 대해서도 코리아 환타지(1938)가 만주 축전곡(1942)보다 먼저 작곡되었다며 오히려 반대로 표절됐다고 반박했다.

한 총장은 안익태가 한국전쟁 발발 후 한국환상곡을 통해 조국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으며, 어느 나라에서든 합창은 한국어로 불러야 한다고 명시한 것과 1955년 귀국해 서울국제음악제 주관 등 국내 음악계 발전에 기여했고 1977년 유해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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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진 목사 애국가는 찬송가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이사)는 한국 애국가가 기독교 찬송가(National Hymn)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며, 나라 사랑 정신과 기독교 신앙의 연관성을 밝혔다.

고 목사에 따르면, 110년 전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인 윤치호가 1908년 출판한 찬미가에 현재 애국가의 원형이 담겨 있다. ‘찬미가14장에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로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로 시작하는 가사가 있으며, 영문 제목은 ‘Patriotic Hymn’(애국 찬송가)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제시했다.

초기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곡조에 맞춰 불렸으며, 현재의 곡조는 1935년 안익태가 작곡했다. 안익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애국가를 완성했으며, “하나님이 보우하사를 최고 높은 음으로 작곡하여 신앙적 의미를 담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 목사는 애국의 정신이야말로 신앙의 기본이며, 당시 교회는 민족이 기댈 든든한 버팀목이었다오늘날에도 애국가를 부르며 하나님을 주인 삼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결론지었다.

이후 논찬에 나선 최이우 목사(종교교회 원로)신앙과 애국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몸처럼 연결된 것이라며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생애와 신앙은 분리될 수 없으며, 교회는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애국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규 목사(청주순복음교회)광복과 애국가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한 발제에 깊이 공감한다, “오늘의 교회가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고, 신뢰를 회복하는 삶을 통해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은 이상대 목사의 총평, 사무총장 백낙균 목사의 광고, 애국가 1-4절 제창, 기념촬영과 대외협력위원장 박재신 목사(은혜광성교회)의 식사기도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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