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웨이크신학포럼 및 성경특강, 림택권 목사 ‘신학과 삶’ 조명
한국교회 원로 목회자의 90년 신앙여정과 신학적 유산 재조명하는 자리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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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대표회장 림택권 목사)와 웨이크신학원이 25일 CTS 11층 회의실에서 개최한 제4회 웨이크신학포럼 및 성경특강이 ‘림택권 목사 신학과 삶’을 주제로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포럼은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한국교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림택권 목사의 신학적 기여와 목회적 발자취를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됐다. 특히 6·25 전쟁 이후 월남부터 미국 목회, 그리고 신학교육자로서의 삶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교회사와 함께한 그의 여정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행사는 세 명의 발제자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 림 목사의 삶을 조명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학교 총장, 웨이크신학원 석좌교수)는 목회자이자 신학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임보혁 기자(국민일보 종교국)는 언론인의 시각에서 그의 생애사를, 김석주 박사(웨이크신학원)는 서북 기독교 전통의 계승이라는 신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또한 최경환 박사(웨이크신학원)의 ‘요한계시록 암기법’ 특강이 함께 진행되어 참석자들에게 실제적인 성경 학습 방법론을 제시했다.
정일웅 박사 “한국교회가 낳은 가장 모범적인 목회자요 신학교육자”
겸손과 신실함으로 일관한 90년 신앙여정, 현장 목회와 신학교육의 통합 모델 제시
포럼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정일웅 박사는 림택권 목사를 “한국교회가 낳은 가장 모범적인 목회자이자 신학교육자”라고 평가하며, 그의 삶을 통해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목회자의 본질을 강조했다.
정 박사는 림 목사의 삶을 세 가지 축으로 정리했다.
우선 월남 신학도에서 목회자로의 여정이다. “혈혈단신 월남하여 신학도의 길을 걸은 목회자”로서 림 목사는 어린 시절 황해도 은율군에서 자란 후 6·25 전쟁을 겪으며 홀로 남하했다. 이후 신학교에서 학문과 신앙의 기초를 쌓으며 목회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일찍부터 미국 유학과 신학교육자의 꿈을 품었고, 박형룡 박사의 영향 아래 복음적 보수신학의 길을 따랐다.
둘째로 정 박사는 “학문적 성과보다 목회자로 우뚝 선 삶”을 강조했다. 림 목사는 미국 이민사회에서 두 차례 교회를 개척하여 자립교회로 세웠고,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로 15년간 목회하며 교회를 복음적 선교공동체로 이끌었다.
정 박사는 “림 목사는 학문적 성취보다 목회 현장에서 신학을 실천하며, 겸손한 목양으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신학교육자로서의 섬김”을 조명했다. 1998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총장으로 부름 받은 림 목사는 두 차례 임기를 수행하며 학교 발전을 이끌었다. 그는 신학교육의 목적을 “현장 목회와 학문을 통합하여 복음에 헌신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학위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그는 “나는 목회를 통해 신학의 실제를 배웠고, 그것이야말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라 고백하며 진실성과 겸손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정 박사는 림택권 목사의 회고록 『역경의 열매』에 담긴 고백을 인용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내가 무엇을 앞장서서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주어진 삶에 충실했을 뿐이다.”
정 목사는 “림택권 목사는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겸손과 신실함의 영적 지도자”라며 “오늘 우리 모두가 그 신앙 인격을 닮아 시대적 복음사역에 쓰임받기를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임보혁 기자 "'여호와 이레'의 삶으로 한국교회에 남긴 발자취"
한국 현대사와 맞닿은 신앙여정, 미완성 존재로서의 겸손한 자기인식 강조
두 번째 발제자인 임보혁 기자는 “림택권 목사의 생애는 곧 ‘여호와 이레’의 삶”이라고 강조하며, 그의 신앙과 목회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잡았는지를 언론인의 시각에서 재조명했다.
임 기자는 림택권 목사가 스스로를 ‘못된 사람’이라 표현한 고백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이는 미완성의 삶, 여전히 하나님의 손길 속에 빚어지고 있는 존재라는 자기인식이었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나의 나 됨을 찾는 작업이 계속된다”는 그의 고백 속에서 임 기자는 “겸손하고 진솔한 영성이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준다”고 해석했다.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한 신앙여정도 소개했다. 그는 림 목사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과 맞닿아 있다고 보았고, 6·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홀로 월남해 남한에 정착한 후, 춘천제일장로교회와 총회신학교에서 신학의 길을 걸었음을 소개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하며 이민교회의 기틀을 세웠고,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담임 시절에는 "맞이하는 교회에서 찾아가는 교회"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복음적 선교공동체를 구현했다고 했다.
은퇴 후에도 계속된 왕성한 활동으로 1998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총장 부임 후에는 신학교육의 질적 발전에 힘쓰며 국내외 선교와 학문적 교류를 확대했다. 은퇴 후에도 성경적성경연구원(SSI)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북한과 해외 선교사역을 지원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임 기자는 한국교회 원로들이 림 목사를 “해박한 지식과 풍성한 영감으로 존경받는 신학자이자 목회자”, “길선주와 한경직을 잇는 대간(大幹)의 거목”이라 평가한 사실을 전하며, “림택권 목사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생애사가 아니라 한국교회와 디아스포라 교회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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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박사 “서북 기독교의 신앙과 실천을 계승한 목회자”
성경적 보수주의와 순교적 신앙, 복음 중심의 삶으로 서북 기독교 정신 구현
세 번째 발제자인 김석주 박사는 “림택권 목사의 신앙과 목회는 서북 기독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실천한 삶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서북 기독교의 특징을 “성경적 보수주의, 순교적 신앙, 복음 중심의 삶”으로 설명하며, 림택권 목사의 여정을 이 틀 속에서 분석했다.
“림 목사는 6·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이후에도 서북 기독교의 정신을 잃지 않았고, 목회와 신학교육 전반에 그 정신을 녹여냈다”고 평가했다.
정릉동 정원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미국 이민사회에서 두 차례 교회를 개척하여 자립교회로 세운 그의 목회 사역에 대해 김 박사는 “단순한 교회 성장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복음을 생활 속에서 증거하는 '실천적 신앙'의 모델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담임 시절, '찾아가는 교회'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한국적 목회 패턴을 넘어선 선교적 교회의 길을 제시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총장으로서 한국 신학교육을 이끈 발자취 역시 서북 기독교의 교육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해석했다.
김 박사는 “림택권 목사의 교육철학은 학문적 성취보다 목회 현장에서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있었다”며 “이는 신앙과 실천을 결합한 서북 기독교 전통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했다.
발제를 마치며 김 박사는 “림택권 목사의 삶은 단순한 한 인물의 기록이 아니라, 서북 기독교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속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며 “그의 신앙적 유산은 후대 교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포럼의 마지막 순서로 최경환 박사가 진행한 ‘요한계시록 암기법’ 특강은 참석자들에게 실제적인 성경 학습 도구를 제공했다.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소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제43회 웨이크신학포럼은 림택권 목사의 90년 신앙여정을 통해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목회자상과 신학교육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세 발제자가 각각 목회적,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그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한국 현대교회사의 산증인이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원로 목회자의 신앙적 유산을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주최 측은 “림택권 목사의 신학과 삶을 통해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신앙적 자산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