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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보다 먼저 정원을 만드셨다”
주서택 목사가 말하는 ‘정원 신학’… 왜 목회자는 자연 속에서 다시 회복돼야 하는가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04-28 10:06

본문

[기획- 왜 지금, 목회자에게 정원이 필요한가 ]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기 전에 먼저 정원을 만드셨다.”

주서택 목사가 천상의정원을 설명할 때 자주 꺼내는 이 문장은, 그가 왜 오랜 내적치유 사역 끝에 정원이라는 공간에 주목하게 됐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게 정원은 단순히 꽃과 나무를 모아 놓은 조경 공간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본래 누리도록 주어진 질서를 회복하고, 상처 입은 내면과 메마른 감성을 다시 일깨우는 자리다. 천상의정원은 그래서 관광지가 아니라, 잃어버린 에덴의 감각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공간에 가깝다.

주 목사의 문제의식은 오늘의 한국교회는 말씀과 사역, 열심과 헌신을 강조해 왔지만, 정작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병들고 메말라 가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적치유 사역 현장에서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며, 많은 고통의 뿌리가 단순한 현재의 스트레스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쌓인 상처, 거부감, 외로움, 낮은 자존감에 연결돼 있음을 보아 왔다. 부모의 말 한마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감정, 혼자라는 인식이 깊게 남아 성인이 된 후에도 우울과 관계의 어려움, 사역의 소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주 목사는 이런 상처를 단지 심리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복음이 실제로 적용되어야 할 마음의 자리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는 특히 외로움을 인간이 겪는 가장 깊은 병 가운데 하나로 본다. 교회 안에 있고, 신앙생활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홀로 남겨진 느낌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내면의 외로움은 건강하게 해소되지 않으면 노년이 되어서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 상태가 사역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목회자 역시 강단에 서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상처와 결핍,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진단은 냉정하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내면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교회 역시 상처 없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니라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그가 교회를 영적 병원에 가까운 공동체로 이해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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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주 목사는 왜 정원이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정원을 만드셨다는 것은, 인간이 본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원형적 자리이며, 그 질서를 잃어버린 결과가 오늘 우리가 겪는 조급함, 단절, 메마름이라는 해석이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단지 죄 사함을 선언하는 차원을 넘어, 깨어진 인간의 마음속 정원을 다시 일구어 내는 일과도 연결된다. 정원은 그래서 미적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질서를 상징하는 신학적 공간이 된다.

천상의정원 곳곳에 배치된 동선과 장치는 이런 철학을 공간적으로 풀어낸 결과다. 방문객은 좁은 문과 좁은 길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게 된다.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천상의 바람길에서는 바람보다 앞서가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당이라 불리는 작은 공간에 들어서면, 창밖으로 보이는 대청호의 풍경이 말을 줄이게 만든다. 모든 장치가 과장된 연출보다 멈추고, 낮추고, 바라보게 하는방향으로 설계돼 있는 셈이다. 주 목사가 말하는 회복은 결국 속도를 늦추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데서 시작된다. 천상의정원은 정원의 미학보다, 정원을 통해 회복되는 인간 내면의 질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주 목사의 설명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감성에 대한 강조다. 그는 설교와 목회를 지식이나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신학적 지식과 교리적 지식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씀은 단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느껴져야하며, 그 감각이 살아날 때 복음은 추상이 아니라 실제가 된다. 그의 내적치유 강의에서도 느낌은 중요한 키워드다. 부정적 감정의 기억이 사람을 오랫동안 묶어 두듯이, 성령 안에서 경험하는 치유와 사랑의 느낌도 신앙생활의 실제적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감성이 회복된 목회자만이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고 본다. 눈물이 메마른 설교는 지식을 전달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심령을 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 목사는 목회자가 자연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목표와 성과만 향해 달려가는 직선 의식에 사로잡히기 쉽다고 본다.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더 큰 결과를 내야 하고, 더 많이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은 목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의 질서로 움직인다고 그는 말한다. 길이 굽이치고, 바람이 멈췄다 불고, 꽃은 서두르지 않고 피어난다. 자연 속에 머물면 사람은 직선적 성취 강박에서 벗어나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과 빛을 통해 하나님과 내면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단지 책상과 강단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걷고 바라보고 머무는 훈련을 통해 자기 영혼의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그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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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정원에 놓인 그분은 꽃으로 웃으신다는 문구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창조의 아름다움으로 미소 짓고, 인간은 그 꽃을 보며 다시 웃는 존재라는 의미다. 도시에 갇혀 콘크리트와 속도 속에만 머물면 사람은 점점 강퍅해질 수밖에 없지만, 자연 속에 들어오면 다시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 주 목사의 설명이다. 이 말은 감상적인 비유에 머물지 않는다. 수생식물을 통한 물의 정화, 좁은 길과 작은 교회당을 통한 마음의 성찰, 그리고 정원 전체를 감성과 영성을 함께 터치하는 구조로 설계한 공간 철학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천상의정원은 사람을 쉬게 하고, 다시 울 수 있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느끼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생식물학습원이 물을 정화하듯, 이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상징적 기능까지 품고 있다.

주서택 목사가 말하는 정원은 결국 목회자의 취미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메마른 강단, 굳어진 감성, 성과 중심 목회가 놓치기 쉬운 인간 회복의 자리다. 한국교회가 지금 다시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더 많이 일할 것인가보다, “누가 먼저 회복될 것인가일지 모른다. 그래서 천상의정원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목회자의 영성이 지식과 열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이제 회복의 공간을 새롭게 상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천상의정원이 개인의 회복에 머물지 않고, 작은 교회당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외된 이웃을 살리는 나눔의 구조로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다룬다. 천상의정원은 목회자의 번아웃을 품는 정원인 동시에, 작은 사랑의 파동을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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