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자체로 존귀함을 실현하는 공간”
동그라미제물포발달장애인센터 임승자 센터장 “관심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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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놀랍게도 절대음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인사도 잘하고 누구보다 따뜻하고 상냥한 성품을 지녔지만, 외롭게 자라야 했던 환경은 늘 마음에 남았습니다.”
동그라미제물포발달장애인센터 임승자 센터장이 센터 설립의 계기를 설명하며 꺼낸 이야기다. 교회 청년들과의 교제 가운데 들려온 이 “작은 울림”이 그에게는 복지의 본질을 새롭게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지적장애 1급이라는 진단명 뒤에 감춰진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신앙에서 시작된 섬김의 철학
임 센터장은 “그 친구에게 담임목사님께서 부모처럼 다가가 함께 울고 웃으며 삶을 나누어주셨고, 그것이 제게는 복지의 본질을 새롭게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단순한 도움이나 시혜가 아닌, 진정한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돌봄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그라미제물포센터는 ‘함께 자라는 공동체’, ‘친구의 가능성을 키워가는 우리 공간’이라는 운영 철학을 품게 됐다. 임 센터장은 “이곳은 누군가를 돕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함께 자라는 공동체”라며 “센터의 모든 선생님들 역시 발달장애인을 단순한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존재로 바라보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센터에서는 각 이용자의 특성과 관심사에 맞춘 개별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마음열기 미술교실’을 비롯해 음악, 체육, 요리 등 다양한 영역별 프로그램을 통해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가능성을 발견해가고 있다.
인상적인 사례도 있다. 장구를 좋아하는 한 이용자를 위해 서울에서 국보급 공연 이력을 가진 전문 강사를 직접 초빙해 수업을 진행했다. 임 센터장은 “그 과정에서 그 친구의 눈빛은 무대 위 예술가 못지않았다”며 “미술에 소질이 있다면 특별 교습을, 음악에 감각이 있다면 음악전공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맞춤형으로 지원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그램은 수단일 뿐, 진짜 목적은 한 사람 안의 잠재력을 함께 찾아가는 여정”이라며 “이 모든 과정이 ‘가능성의 발견’”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사명 속에서 마주한 현실의 무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임 센터장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중단해야 하나 고민했던 때”라며 “발달장애인 친구들에게는 반복과 지속성이 매우 중요한데, 재정적인 어려움이 그 소중한 리듬을 끊을까 늘 마음이 무겁다”고 토로했다.
특히 “훌륭하신 강사님들께 충분한 강사료를 드리지 못한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전문성과 열정을 갖고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주시는 분들이 센터의 철학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함께 나눠주며 기꺼이 동행해주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또 다른 아픔도 있다. 부모님의 무관심으로 인해 시설에서 외롭게 지내는 친구들의 모습이다. 임 센터장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좋은 부모’를 만난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 사이에는 큰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이 센터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가정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린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단지 센터 안에서의 돌봄을 넘어, 각 가정을 직접 찾아가 아이들의 가능성을 함께 발견해내는 ‘발굴의 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가족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며
센터는 이용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회복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임 센터장은 “‘가족이 안심해야 아이가 자랍니다’는 말이 저희 센터가 운영되는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며 “보호자와의 열린 소통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정기적인 간담회와 1:1 상담은 물론, 보호자의 정서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해 보호자들께 실질적인 지지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여정은 단순한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 ‘부모와 자녀 그리고 센터가 함께 성장하는 삼각의 공동체’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원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센터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와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임 센터장은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을 품고 지역사회와의 연결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하나씩 내딛고 있다”며 “주민센터, 구청, 복지관, 자립센터, 보호작업장, 장애인시설을 직접 찾아가 센터를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앞으로 매년 ‘같이 걷는 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임 센터장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걸으며 자연스럽게 웃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연을 통해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며 “캠페인보다 더 강력한 힘이 ‘함께하는 시간’ 안에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성장과 선택의 자유를 향한 꿈
센터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성장과 선택의 자유’다. 임 센터장은 “단지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꿈을 말할 수 있고, 그 꿈을 위해 배우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의 진심”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지역 내 소규모 일자리 연계, 자기결정권을 실현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들을 통해 당사자가 삶의 주체가 되어가는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그는 “사회는 종종 ‘발달장애인은 자립이 어렵다’고 단정하지만, 어떻게 돌보고 어떻게 케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완전체는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모습으로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관심이 시작하는 기적
센터를 이끌면서 임 센터장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이 센터를 시작하고 나서야 ‘진짜 경청’이 무엇인지 배웠다”며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어주는 훈련을 통해 저 자신도 더 깊어진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가 지역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관심이 시작입니다.” 임 센터장은 “저희 센터가 존재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기적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며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지역에서 환영받고,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십시오. 그 손끝이 따뜻할수록, 지역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모든 과정은 저에게 ‘사명’이라 느껴집니다. 부족함 가운데서도 서로의 진심이 모일 때, 길은 반드시 열린다는 믿음으로 매일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절대음감을 가진 한 청년에게서 시작된 작은 울림이 이제 지역사회 전체를 품는 큰 꿈으로 자라고 있다. 동그라미제물포발달장애인센터가 그려가는 ‘함께 자라는 공동체’의 미래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