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움비전선교회 한아람 목사 '두 번의 전역, 한 번의 사명'
“군은 나의 신앙을 무너뜨린 곳이었고, 다시 나를 부르신 곳이었다”
본문
[한 영혼을 세우는 다리, 다세움비전선교회 ①]
“내가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니…”
그날은 당직이었다. 예배 시간은 이미 지났고, 그는 막사에 남아 있었다. 평생 당연하게 지켜온 주일이 그날 끊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이 갈라지지도, 벼락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군은 그에게 처음으로 신앙을 합리화하게 만든 공간이었다. 반복되는 훈련과 근무, 당직과 상황은 조금씩 기준을 무디게 했다. 신학생이었고, 목회의 길을 걷겠다고 고백한 사람이었지만, 그 3년은 마음 한켠에 설명되지 않는 빚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되지 않는다. 기도원이 집이던 시절이 있었다. 개척 초기, 빛이 잘 들지 않는 지하 예배당 한켠이 가족의 거처였다. 낮에는 교회였고, 밤에는 방이 되던 공간. 형편은 넉넉지 않았지만 부모는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를 붙들고 묵묵히 걸어갔다.
그는 그 등을 보며 자랐다.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한 영혼을 붙드는 삶이 무엇인지 배웠다.
목회자의 아들로 자라며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부모가 목회자라고 해서, 나도 그 길을 가야 하는가.”
답은 고등학교 2학년 수련회에서 찾아왔다. 그날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다는 확신을 얻었다. 부모의 그림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받은 소명이었다. 그는 신학을 선택했다. 졸업과 동시에 학사장교로 임관했다. 군은 잠시 거쳐 가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흔들렸다.
주일을 지키지 못한 날의 충격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무뎌졌다. 합리화는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는 그 시간을 두고 “복음의 빚을 남기고 온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지켜내지 못한 자리, 붙들지 못한 영혼들에 대한 책임감이 오래 남았다.
전역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의 시작이었다. 그는 다시 사역 현장으로 돌아왔다. 식어가던 열정이 조금씩 살아났다. 그리고 또 한 번, 군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복무가 아니라 사명으로. 군종장교로, 마음에 남아 있던 그 빚을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훈련병에서 최전방 장병들까지. 군 복무 중 교회에 나와 눈물로 기도하던 청년들을 그는 기억한다. 그러나 더 오래 남은 장면은 전역 이후였다. 그렇게 열심히 예배하던 청년들이 현실 앞에서 신앙의 끈을 놓는 모습을 반복해서 지켜보았다.
“지금보다 전역 이후에 더 잘 믿어야 한다.”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전역은 자유이지만 동시에 가장 취약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한 청년이었다. 군종병으로 함께 섬기며 누구보다 성실했던 청년. 코로나 시기를 지나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연결된 그가 이단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권면했지만 돌아오지 못하겠다는 답을 들은 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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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전역 이후를 붙들지 못했는가.” 그 질문이 다세움비전선교회의 시작이었다. 군 안에서의 열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깨달음. 예배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책임지는 사역이 필요하다는 확신이었다. 군인교회와 지역교회를 잇는 통로, 전역 전과 전역 후를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했다.
두 번의 전역을 경험한 그는 이제 그 의미를 안다. 한 번은 신앙이 흔들린 자리였고, 한 번은 사명이 또렷해진 자리였다. 그는 실패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 영혼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한아람 목사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정리한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살리고 세워가는 사명의 사람으로 살자.” 그 문장은 다짐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결론에 가깝다. 주일을 지키지 못했던 그날의 충격은 오래 남았고, 그 무뎌짐은 결국 사명이 되었다. 전역 이후를 붙드는 사역, 한 사람의 믿음을 끝까지 이어가게 하는 일.
전역은 자유의 시작이지만, 신앙인에게는 가장 외로운 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놓는다. 사람과 교회를, 군과 지역을, 전역 전과 전역 후를 잇는 다리다. 한 사람을 지키는 일이 결국 한 가정과 한 지역의 내일로 이어진다고 그는 믿는다.
군은 그의 신앙을 무너뜨린 곳이었고, 동시에 하나님이 다시 세우신 자리였다. 그러나 그는 안다. 이 다리는 혼자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전역하는 청년은 매년 수만 명이다. 그들 모두가 다시 지역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붙들지 않으면, 흩어진다.
한 사람의 사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가 필요하고, 동역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기도가 필요하다.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은 결국 누군가의 책임이 된다. 그리고 지금, 그 책임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