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앞엔 ‘바보’, 하나님 앞엔 ‘지혜’로 살아갑니다
신간-바보 이반 교회
본문
일곱 자녀 입양해 8남매 키운 히로시마제일교회 이상훈 목사의 신간 『바보 이반 교회』
오늘날 한국교회를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언어는 여전히 ‘성장’과 ‘부흥’이다. 더 많은 성도, 더 웅장한 예배당, 더 넓은 사회적 영향력이 곧 목회의 성공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그러나 화려한 성장 지표 뒤편에서 가장 연약한 한 사람이 지워지고 밀려난다면, 과연 그것을 참된 교회라 부를 수 있을까.
여기,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사다리에서 스스로 내려와 기꺼이 ‘바보’가 되기를 자처한 한 목회자의 가슴 따뜻한 서사가 있다. 2003년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선교사이자 히로시마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이상훈 목사의 신간 『바보 이반 교회』다. 저자는 아내 장미숙 선교사와 함께 일곱 명의 아이를 입양해 총 여덟 명의 자녀를 둔 다둥이 아빠로서, 아이들을 중학교 과정까지 직접 홈스쿨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세상의 계산법을 버리고 한 영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내어준 한 가족과 작은 교회의 순종의 기록이다.
성공한 사역자의 꿈을 버리고 마주한 ‘바보들의 교회’
처음 일본에 발을 디뎠을 때, 이상훈 목사에게도 원대한 꿈이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선교사이자 목회자로 인정받고, 명성 있는 이들과 교류하는 ‘성공한 사역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철저히 반대 방향이었다. 저자는 20여 년 가까이 강단 위에서 빛을 발하는 대신,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고 오물을 치우며 먼지를 뒤집어쓰는 지난한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힘 빠진 중년의 남자를 보며 세상의 모든 헛된 꿈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진짜 목회가 시작되었다.
멋진 프로그램과 번듯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대신, 하나님은 그에게 세상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내셨다. 지체장애인, 이혼의 상처로 홀로 지내는 이, 주일 한 끼 식사를 위해 교회를 찾는 소외된 이들이 그의 곁에 남았다.
저자는 책의 제목을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공에서 따와 ‘바보 이반 교회’라 명명했다. 명예와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가진 것을 묵묵히 나누는 이반처럼, 세상의 눈에는 나사가 풀린 바보 같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없이 지혜로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저자 이상훈 선교사와 가족>
단 한 사람을 위해 교회의 구조를 뜯어고치다
이 책이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단순한 위로의 메시지나 당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목사는 청각장애인 교우 한 사람이 예배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직접 수어를 배워 설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통역을 맡기는 것으로 타협하지 않고, 그 한 사람이 온전히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교의 호흡과 예배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꿨다. 놀라운 것은 곁에 있던 성도들 역시 기쁨으로 그 변화를 감수했다는 점이다. 모두에게 익숙하고 편리한 예배 대신, 단 한 사람도 배제되지 않는 ‘사랑의 불편함’을 선택한 것이다.
교회에 올 수 없는 이들을 향해서는 교회가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지적장애가 있는 모자, 치매로 요양원에 격리된 노인, 원폭 피해의 참혹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재일교포 2세를 찾아가 곁에 머물렀다.
수술과 치료의 고비를 넘기던 성도 아키코 상이 어느 날 “목사님, 영원히 한국에 돌아가시진 않지요?”라고 불안해하며 묻자, 이 목사는 “우리를 받아줄 교회도 없고요. 아키코 상과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라고 굳게 약속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찾아가고, 병원의 보호자가 되어 끝까지 곁을 지킬 때, 교회는 비로소 차가운 건물을 벗어나 생명을 품은 ‘사람’의 모습이 된다고 속삭이는 듯 하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저자가 왜 가정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설명해 준다.
입양과 홈스쿨링, 가정으로 확장된 구체적인 순종
교회 안에서 실천한 환대와 책임의 사역은 사실 가정에서 먼저 시작됐다. 첫 아이를 낳고 유산의 아픔을 겪은 부부는, ‘생명을 풍성히 얻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입양을 결단했다. 그렇게 일곱 명의 아이를 가슴으로 낳아 8남매의 거대한 가족을 이루었다.
한 아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일시적인 선행이나 동정이 아니다.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피 묻은 언약이자 삶의 공간과 형태를 송두리째 내어주는 희생이다. 부부는 중학교 과정까지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가르치며 사랑이 결코 감정의 유희가 아니라 지난한 인내와 수고를 동반하는 ‘구체적인 책임’임을 온몸으로 증명해 냈다. 결국 이들에게 입양과 홈스쿨링, 수어 예배와 찾아가는 사역은 별개의 활동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한 영혼을 끝까지 품어내는 ‘단 하나의 순종’에서 파생된 거룩한 열매들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과연 누가 진짜 바보인가”
저자는 고린도전서 3장 19절 말씀을 인용하며 세상에는 두 부류의 바보가 있다고 역설한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어리석은 자들과, 주님의 눈으로 보실 때 어리석은 자들이다. 세상의 지혜는 효율을 따지고 성장을 쫓지만, 십자가의 지혜는 기꺼이 미련한 자가 되어 한 영혼을 껴안는다.
이 책이 그려내는 풍경은 성경이 말하는 한 가지 메시지에 닿는다. 교회의 정체성은 다수가 누리는 편의가 아니라, 가장 약한 한 지체를 중심으로 재편될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예배의 언어를 바꾼 결정은 그래서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몸 전체가 지체 하나를 위해 움직이는 공동체의 본질을 보여준다.
『바보 이반 교회』는 번듯한 성공담도, 비현실적인 위인전도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부흥은 과연 복음적인가?”, “우리 교회는 가장 약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익숙한 뼈대를 고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교회의 참된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 돌봄과 환대의 공동체를 꿈꾸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이 책은 가슴 따뜻한 하나의 사례를 제시한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영향력을 쫓는 일에 지쳐 있다면, 밭에 감추어진 보물처럼 척박한 땅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바보 이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 과연 나는 영원한 생명 앞에서 지혜로운 자인가, 아니면 세상의 얄팍한 계산기에 갇힌 진짜 바보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