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년 조용기」가 던진 ‘개신교 인물 평가의 새로운 문법’
흠 없는 영웅 만들기도, 과오로 생애 지우기도 넘어
본문
소명과 열매·권력과 책임·실패와 회개를 함께 물어야
“나는 성자가 아닙니다. 성자가 되려고 해본 적도 없습니다.”
고(故) 조용기 목사의 청년 시절을 다룬 영화 「청년 조용기」 시사회 후 열린 대화에서 박명수 서울신대 명예교수가 소개한 조 목사의 말이다. 이 한마디는 영화에 대한 평가를 넘어 한국 개신교가 자신의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박 교수는 조용기 목사가 지향했던 인물을 ‘중세적·수도원적 성자’와 구분했다. 그가 보기에 조 목사가 꿈꾼 것은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 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이 세상 안에서 건전한 힘”이 되는 사람이었다. 조 목사가 부인을 둘러싼 비판에 대해 “우리 아내가 성자가 아닌 것은 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된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물론 이를 가톨릭 전체의 인간관과 개신교 전체의 인간관을 나누는 공식으로 단순화해서는 곤란하다. 박 교수의 발언은 가톨릭 전체라기보다 중세 수도원적 성자상을 대비항으로 삼아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강조해 온 ‘세상 속의 소명’을 설명한 것으로 읽는 편이 적절하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자기 인물을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개신교 인물사의 질문은 ‘이 사람은 얼마나 흠이 없었는가’에서 출발할 필요가 없다. 종교개혁 전통이 인간을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으로 본다면, 신앙적 위대함과 인간적 무결점은 같은 말일 수 없다. 오히려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죄인인 이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어떻게 감당했는가. 힘과 권력을 얻은 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실패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켰는가. 그리고 결국 무엇보다 누구를 남겼는가.
이 기준은 조용기 목사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조용기 목사는 전후 한국 사회의 가난과 질병, 절망 속에서 희망과 성령, 치유와 축복을 말했다. 그의 성령운동과 교회성장, 세계선교, 평신도 중심의 구역조직은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 오순절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박 교수는 이날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이 산업화 과정의 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이 아닌 자기 변화와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건전한 시민’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역사적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이 곧 인물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조용기 목사를 평가하려면 세계 최대 교회를 세웠다는 기록과 함께 그처럼 거대한 종교적 권한과 조직을 맡은 지도자가 재정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물어야 한다. 가족과 기관을 둘러싼 논란, 재정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 은퇴 이후 실질적 권력의 이양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는 그의 선교·목회적 공헌과 별개의 평가항목이어야 한다.
반대로 그의 잘못만을 근거로 수십 년의 목회와 한국교회 및 세계교회에 미친 역사적 영향을 통째로 삭제하는 것 역시 충분한 역사서술은 아니다.
「청년 조용기」를 연출한 권혁만 감독의 설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권 감독은 영화에서 조 목사의 논란과 회개 장면을 제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런 부분이 빠지면 조용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결국 “우상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만 남기면 보통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먼 인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잘못과 함께 회개도 기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개신교 인물 기록의 중요한 문법은 ‘성인전’보다 오히려 ‘고백록’에 가까울 수 있다. 성공과 업적만을 골라 신앙의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명과 실패, 죄와 책임, 회개와 다시 일어섬을 함께 기록하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조용기 목사를 재평가한다면 최소 네 개의 질문이 동시에 올라와야 한다.
그는 어떤 소명을 붙들었는가. 그 소명을 통해 어떤 사람과 공동체를 남겼는가. 커진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그리고 잘못했을 때 얼마나 책임지고 돌이켰는가.
여기에 신학적 유산과 약자에 대한 태도, 후계자와 권력 이양, 교회와 사회에 남긴 공적 결과까지 더해져야 한다.
이런 평가틀은 조용기 목사를 변호하기 위한 것도, 다시 심판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역사적 인물을 다루면서 반복해 온 두 극단을 넘어가기 위한 것이다. 한쪽은 지도자의 실패를 감춘 채 영웅을 만들고, 다른 한쪽은 한 번의 실패로 한 사람의 모든 역사적 의미를 지운다.
조용기 목사에 대한 재평가는 그를 성자로 만드는 작업도, 그의 과오만으로 전체 생애를 지우는 작업도 아니다. 소명과 열매, 권력과 책임, 실패와 회개를 같은 평가표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