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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서 교수, 한국어 구약성경 번역한 피터스 목사 일대기 소개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와 <시편촬요> 영인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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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우 기자 작성일21-11-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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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국어 구약성경 번역자 피터스 목사(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 한국명 피득(彼得))의 일대기를 소개한 책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가 출간됐다. 이와 함께 피터스 목사가 최초로 번역한 1898년 판 <시편촬요> 영인본도 발간됐다. 

구약성경 번역자인 러시아 출신 유대인 피터스 목사는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못했다. 피터스 목사는 1898<시편촬요> 번역 후 구약성경 개역위원회 평생위원으로 선임돼 1937개역 구약성경을 완성한 인물이다.

피터슨 목사를 재조명한 사람이 박준서 명예교수(연세대 구약학). 잊혀진 존재였던 피터스 목사를 한국교회에 알리기 위해 피터스목사 기념사업회회장을 맡고 있다.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어학에 특출한 재주, 히브리어 통달

피터스 목사는 1871년 제정 러시아(오늘날 우크라이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 이삭 프룸킨(Isaac Frumkin)’도 박준서 교수가 연구 끝에 발굴해낸 것이다.

어린 프룸킨은 유대교 회당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시편과 기도문을 히브리어로 암송하며 자라났다. 어학에 특출한 재주가 있었던 그는 히브리어에 통달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에서는 유대인 차별과 박해가 심해,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고 있었다. 23세 때 그도 러시아를 떠났다.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향했을 때, 그는 발길을 동쪽으로 돌렸다. 일거리를 찾아 이집트, 인도, 싱가포르를 전전하다, 일본에까지 이른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그는 교회를 찾아갔다. 정통파 유대인이 교회를 찾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그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독일어는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했다. 그가 찾아간 교회에서 사역하던 미국인 선교사는 마침 독일어에 능통했다.

독일어로 기독교에 대해 2주 동안 배운 이삭 프룸킨은 이후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된 그는 새 사람이 된 징표로 미국인 선교사의 이름을 따라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라고 개명했다.

이 소식을 미국성서공회 일본 책임자가 되는 헨리 루미스 목사가 듣고, 세례식에 참석해 피터스에게 한국에 나가 권서(卷書)로 일할 것을 제안했다. 피터스 청년은 한국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제안을 받아들여, 1895년 한국을 찾게 된다.

한국에 온 피터스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신약성경 쪽복음을 팔기 시작했다. 언어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던 그는 한국 입국 2년 만에 한글에 완전히 능통해졌다.

그는 그때까지 구약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권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히브리어로 애송하던 시편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시편 중 62편을 발췌 번역했을 때, 한시라도 빨리 한국 사람에게 구약성경을 읽히겠다는 일념으로 시편촬요를 출판했다. ‘촬요선집이라는 뜻이다. 이때가 1898년으로, 피터스 목사 일대기와 함께 출간된 <시편촬요> 찬송시 영인본이 그것이다.

<시편촬요>는 역사상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구약 성경이다. 이로써 우리 민족은 처음으로 구약 말씀을 우리말로 읽게 된 것이다. <시편촬요>는 출간하자마자 매진 행렬을 이뤘다. 2천 부를 추가 인쇄했지만, 그것도 곧 매진됐다. 박 교수는 당시 한국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갈급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피터스 목사가 하나님으로 번역한 후 개신교에서는 호칭이 하나님으로 확정

박 교수에 따르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시편촬요>는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이라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이는 영어나 중국어 중역이 아니라, 피터스가 능숙한 히브리어로 원문에서 직접 번역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순 한글로 번역 띄어쓰기가 보편화 되기 전, 띄어쓰기 시행 피터스의 한국 입국 2년 만에 혼자 힘으로 구약 중 번역이 가장 난해한 시편을 유려한 한국어로 번역 등이다.

이번에 출간된 <시편촬요>에는 <찬셩시>도 수록돼 있다. 박 교수는 피터스는 시편을 번역하면서, 찬송가 가사도 작사했다. 유대인 전통에서 시편은 읽는 책이 아니라 노래로 부르는 것이라며 그가 번역한 시편을 주제로 17편의 찬송가 가사를 작사했고, ‘시편촬요와 같은 해 출간된 초기 찬송가 찬셩시에 수록했다(1898)”고 설명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75(주여 우리 무리를), 383(눈을 들어 산을 보니) 등은 피터스 목사가 작사한 것이다.

박준서 교수는 개역 구약 성경이 완성되기까지,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호칭(하나님/하느님)에 관해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개역 구약 성경에서 피터스 목사가 하나님으로 번역한 후 개신교에서는 호칭이 하나님으로 확정됐다피터스 목사를 도운 연동교회 이원모 장로의 공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서 교수는 향후 기념사업회와 함께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피터스 목사 기념비 건립, 피터스 목사 설교 육필 원고를 모아 설교집 출간, 기념강좌 개최, 영상물 제작, 자료 전시실 및 기념관 건립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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