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나비] 2025년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자.
본문
하나님은 죄의 고난에 신음하는 인간들을 찾아 성육신(incarnation)하여 세상에 오셨다.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로 다가가 저들을 돌보고 저들의 친구가 되자.
크리스마스(성탄절)는 단순히 한 해가 저무는 세모(歲暮)를 알리는 이정표(milestone)가 아니라 삶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교훈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성탄절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기쁨’(Joy)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 국가처럼 어수선하고 지역, 세대, 이념의 분열로 인해 소통과 화합이 막연한 상황에서 무슨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우리는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변해야 하겠다. 하나님에 반역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신, 하나님이 사람 되신 자기 낮춤과 비움의 사건은 우리에게 겸허의 본이 되신다. 샬롬나비는 2025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겸허와 사랑이 우리 사회에 편만하기를 소망하면서 다음같이 표명한다.
1. 당시 로마 식민지배의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선민 이스라엘 믿음의 사람들은 메시아를 사모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던 시대에 선민(選民, chosen people) 이스라엘은 굴욕적인 대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다. 과거 이집트 제국의 430년 종살이에서, 또 바벨론 제국에서의 70년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여 자유를 누리게 된 자랑스러운 역사가 단순한 추억거리가 되고 또다시 로마제국의 권력에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었다. 기대를 걸었던 경건한 제사장 가문인 하스모니안 왕조도 권력다툼과 타락으로 주전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자격이 없는 가짜 지도자들이 로마제국에 아부하며 정치, 종교, 사회를 휘어잡고 세도를 부리고 있어서 민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오히려 선민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메시아-구원자를 고대하고 살아왔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 상황도 그때 못지않게 소망을 찾기가 쉽지 않은 암울함이 대한민국을 덮고 있다. 국내적으로 볼 때, 국론 분열이 너무나 심한 상태인데 정치가들은 더욱 극단으로 정치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만을 추구하고 있다. 국민의 전체적인 국론통일이나 국민의 정치적 안정에 대한 소망과 여야 협치 가운데 나라의 발전에 대한 기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국제적으로 볼 때, 러시아-중국-북한의 유착관계가 깊어지는 가운데 트럼프의 거래식 동맹관계 추구는 동북아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땅을 바라보면 대립과 불안이 우리를 엄습하지만, 그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믿음의 눈을 들어 메시아 탄생의 기쁜 소식을 기대하며 소망을 가져야 하겠다. 누가 이 어두운 시대 속에 소망의 등불을 들 것인가? 시대적인 혼란 속에서도 약속의 성취를 통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의 등불을 들어야 하겠다. 성탄의 기쁨 속에서 메시아의 다시 오심의 소망을 가져야 하겠다.
2.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고난에 신음하는 인간들을 찾아 성육신(incarnation)하셨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을까? 나라를 잃고 분열과 부정·불의가 난무하던 어두운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성경에 약속하신바 ‘여자의 후손’인 구세주(메시야)를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최종병기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두고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임무-인류 구원을 수행하도록 예정과 섭리 가운데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케 하시고 마침내 탄생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간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구원을 위한 첫 단추이기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밖에 없다. 탄생이 없었다면 대속의 십자가 죽음도 부활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사람 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소통하러 오셨다는 기쁜 소식이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러 우리를 찾아오셨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와 만나시러 오신 복된 시간이다. 그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선언한다.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와 동일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우리를 섬기려고 자신을 낮추셨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겠다. 우리의 갈라진 모습들, 대립하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소통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찾아오셨듯이 우리들도 낮은 곳으로 내려가 소통하며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다.
3.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한 인간 죄를 짊어지기 위하여 아기 예수로 탄생하셨다
성탄절 아기 예수로 하나님의 오심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하나님 창조의 실패로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며 대적하는 자들에게 답을 주시기 위함이다.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온전히 사람으로 사시며 범죄하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게 하신 하나님의 야심찬 반격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온전한 성인(成人)으로 창조되었으나 불순종 죄값으로 후손(後孫)들은 잉태의 고통을 겪고 출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태로부터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사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신 분이다. 아담과 하와도 예수님처럼 사셨다면 타락의 길을 걷지 않았음을 증명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로 탄생하셨다.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계기로 그들을 일생동안 죄에 매여 살게 만들려는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러 오셨다. 히브리서 2장 14-16절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범죄하여 마귀에 매여 한 평생 두려움 속에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구하려 혈과 육을 입고 오셨다. 혈과 육을 입고 오셔서 종노릇하는]데서 해방시키러 오셨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도 매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주어야 하겠다. 죄의 세력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풀어주어야 하겠다. 영적인 묶임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것들에 매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풀어주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다.
4. 한국 교회여, 목자들의 찬송-새벽송(shepherd's hymn, dawn song) 전통을 되살리자
밤에 베들레헴의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를 통해 가장 먼저 성탄절의 기쁜 소식을 들었다. 당시 목자는 밤새며 심지어 추운 겨울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는 가난하고 천한 직업 종사자들이었다. 천사가 그 기쁜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할 때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3-14) 하며 찬송하였다. 구주 탄생 소식을 접한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목자들은 천사들이 찬송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자, 베들레헴으로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고 천사들이 전한 그 모든 소식과 목격담을 전하며 기쁨을 극대화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의롭고 경건한 예루살렘의 시므온, 성전에서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했던 여 선지자 안나도 기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당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
목자들의 찬송을 본받아 한국 교회는 성탄절 날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새벽송 문화를 한동안 지켰다. 소음과 숙면방해라는 죄목(?)으로 중단된 새벽송을 다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오늘날은 크리스마스 캐롤마저 들리지 않는 성탄절이 되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새벽송을 되살려보자.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린 역사를 기념하며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을 새며 선물 교환을 했던 전통도 되살려보자.
5. 왕중 왕(the king of kings)으로 오신 예수님은 짐승 먹이통(구유, manger)에 누이셨다.
경제적 여유가 넘쳐 대궐 같은 저택, 궁전 같은 예배당, 철옹성 같은 청와대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최고급 인테리어 가운데 다수의 수종자들을 거느리며 철통 경호를 받고 위세 등등하게 군림하며 으스대는 헌신과 봉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오늘의 지도자들과 부한 자들, 그리고 초대형교회에서 수천명의 교회 제직자들, 수만명의 설교 청취자들을 거느리는 교회 지도자들은 성탄절의 의미를 반드시 곱씹기 바란다. 이들 가운데는 참된 섬김의 목회자들이 적지 않은 것은 한국교회의 보배다. 마구간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권세 있는 자들을 그들의 보좌에서 내리시고, 낮은 자들을 높이시기 위하여 부자들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시고, 배고픈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시기 위하여 땅에 오셨다. 한국교회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노래했던 마리아의 찬송과 기도가 장식품으로 남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분열된 마음과 과잉 욕망이나 교활한 변태를 거부하는 자기부정으로 치유하고 겸손과 온유함,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 성탄절의 혁명적 본질-평화와 공생을 회복하는 올해 성탄절이 되길 소망한다.
6. 한국교회는 성탄절의 의미를 되찾는데 가장 앞장서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자들을 돌보자
성탄절이 국경일이 되면서 세상은 연말연시 가장 바쁠 때 즐길 수 있는 휴일로 보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도 성탄절이 되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잔치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은 성탄절이 되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교회에서 보이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도 사라져 가고 있다. 주님을 잊어버린 세상의 즐거움을 위한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교회마저 성탄의 기쁨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다. 교회는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면서 그의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실천하여야 하겠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주님을 본받아 세상을 섬기며, 소망없는 세상에 영생과 천국의 소망을 드높이 전해야 하겠다. 주님은 가장 어두운 곳에 오셔서 온 세상에 미칠 기쁜의 소식이 되셨다. 한국의 교회는 세상이 가장 힘들어하고 갈 길을 찾지 못할 때 세상의 구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소망이요 만민에게 비추는 구원의 빛으로 전해야 하겠다. 소망없는 곳에서 소망을 제시하고 기쁨이 없는 곳에서 기쁨이 되는 교회, 세상이 바라며 기대하는 교회가 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로 다가가 저들을 돌보고 저들의 친구가 되자.
2025년 12월 2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