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기도해 준 죄, 그리고 목회자의 자리
법의 언어와 목회의 언어는 왜 충돌하는가
본문
<기도와 목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목회자는 언제부터 “기도해 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됐을까.
법의 언어로 보면 연루이고, 수사의 시선으로 보면 개입이지만, 목회의 언어로 보면 그것은 요청이다. 누군가 “기도해 달라”고 말할 때, 목회자는 그 사람의 사건부터 묻지 않는다.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목회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질문은 최근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특검 수사 과정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문학 속에서는 미리엘 주교는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을 감싸 안았다. 주교는 장발장의 죄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됐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민주화 인사와 학생들이 공권력의 탄압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숨어들었다. 성당은 법을 무력화한 공간이 아니었다. 국가 권력이 잠시 멈춰 서서 숙고하게 만드는 경계선이었다.
2015년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 머물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는 사찰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 한 달 넘게 조계사 주변에서 기다렸다. 국가는 법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종교 공간의 상징성과 중립성은 인정했다. 이것이 정교분리가 실제로 작동했던 방식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법의 언어’와 ‘역사의 평가’가 어긋났던 경험을 갖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아래에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와 복음을 전한 행위는, 당시의 법과 질서로만 본다면 명백한 불법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한국 사회는 교육·의료·복지·인권의 토대를 얻게 되었고, 오늘의 한국교회와 근대 사회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 사례가 오늘의 수사와 동일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모든 행위를 오직 그 시대의 법 조항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으며, 특히 종교가 수행해 온 공적 역할은 언제나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돼 왔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교회 연합기관 대표의 발언은 이 지점을 다시 환기시켰다. 그는 “기도해 달라는데 기도 안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목회자는 목자의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말은 특정 사건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목회자가 목회자일 수 있는 최소 조건을 설명한 언어에 가깝다.
목회자의 딜레마는 단순하다.
법은 행위의 ‘결과’를 추적하고, 수사는 ‘혐의’를 증명한다. 그러나 목회는 영혼의 ‘형편’을 살핀다. 같은 행위가 법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관계는 연루가 되고, 돌봄은 개입이 되며, 기도는 청탁으로 오해받는다. 문제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언어다.
물론 종교가 사법 정의를 가로막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권력이 목회의 언어를 법의 언어로만 해석하기 시작할 때, 종교의 자유는 선언 속에만 남고 현실에서는 침묵하게 된다. 그 결과 목회자는 점점 말을 아끼고, 만남을 피하며, 기도를 미루는 존재가 된다. 이는 특정 목회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법은 유죄를 판단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와 상담, 품음의 행위까지 범죄의 맥락으로 해석되는 사회에서, 목회자는 어떻게 목회자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다음 논란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