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칼럼] "고난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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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로 부모를 선택하고 출생한 사람이 없습니다. 태어나보니 부모와 형제, 친척들을 위시한 사회적 집단에 속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화목하고 행복했다면 더 없는 기쁨이겠지만 나의 선택은 일도 없었습니다. 깊은 산골 깡촌에서 가난으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왔지만 성인이 된 지금 지난 시간을 회고해 보니 고통과 연단이 은총으로 다가왔습니다.
권성수 목사의 회고록 ‘고통의 은총’은 저자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환난은 인격을 낮추거나 가벼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생들이 걸어왔던 고비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거기에 있었다’라는 여호와 삼마의 의미를 더욱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조부모, 부모의 신앙을 이어 받았습니다. 목회자이신 부친이 교회를 개척하였고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하나가 된 가족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복음을 전하는 곳에 충성을 다하는 삶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당시는 납득하기 어려운 육체적인 고통의 시간들이었지만 주님을 만나는 소중한 시절이었다고 추억합니다.
부친이 고향을 떠나 서울 홍은동과 상도동에서 교회개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역의 어려움으로 자주 이사를 해야 했고 가족들은 빈곤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총명했으나 학업에 전념할 수 없어 생활의 전선에서 힘겹게 견뎌야만 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여전히 그곳에 계셨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권성수 목사는 어렵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믿음의 배우자와 결혼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각종 일들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하나님은 가정과 학업에 함께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영성과 인성 그리고 지성을 겸비한 신학자요, 목회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자로 모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지내며 배신, 모함, 질투, 용서, 배려와 같은 감정들을 온 몸으로 체험하였습니다. 신학자로서 성공하였지만 인격적인 성장을 위하여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였습니다. 그 고난의 시간은 사람들을 예수의 마음으로 이해하며 품을 수 있는 인격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고백 했습니다.
어떤 후배의 질문에 권성수 목사는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교수의 생활보다 목회의 삶이 축복이었습니다. 영혼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여정은 행복과 생명을 향한 열정의 세월이었습니다. 신학은 교회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곳에 반드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선교에만 집중된 목회 구조를 영혼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사역의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통하여 지금의 균형 잡힌 교회가 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사역의 핵심은 성경(Bible), 강해(Exposition), 성령(Spirit), 변화(Transformation)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 실제적인 방향은 선교(전도), 예배, 교제, 교육(훈련), 봉사(사역)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과 지구촌에 있는 이들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균형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살펴보면서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 자신의 ‘고통을 뒤집으면 주님의 은총이 보인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고난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임을 기억하고 지친 영혼과 상처 받은 이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갑시다.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인관관계의 상처 속에서도 절대 실망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신앙과 인격 그리고 어떠한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의 은총이 스며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방송가족들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