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두 개의 시간 속에서 현존하는 성경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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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남화연님에 의하면 작업에는 늘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고 합니다. 하나는 역사와 기록 속에 남은 시간이고 또 하나는 지금 우리의 몸 혹은 마음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감각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 두 시간 사이를 오가며 사라진 움직임과 누락된 기억의 흔적을 현재의 시간으로 다시 불러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중시하면서도 우리의 몸과 마음 안에서 사라진 시간의 흔적을 주목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재현의 사건을 넘어서 역사와 시간을 통과하여 기억을 남기고 현재 자신의 삶과도 맞닿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몇 년 전 ‘다시, 별 헤는 밤’이라는 윤동주 평전시집을 쓰지 않았습니까? 저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 사람의 목사로서,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윤동주의 시 세계를 새롭게 추적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윤동주 관련 평전과 연구 서적을 탐독하고 직접 용정을 여러 번 방문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릿교 대학, 도시샤 대학, 후쿠오카 감옥 등을 두루두루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 장로님과도 윤동주 묘 앞에서 벌거벗긴 무덤에 뗏장을 입히며 가슴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윤동주야말로 민족의 고난에 대한 연민과 반제국주의의 저항정신을 시로 표현한, 그야말로 저항적 예언자 시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윤동주의 시심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윤동주의 시심 속에 들어가서 차마 그가 쓰지 못하고 또 쓸 수 없었던 시를 쓴 것이죠.
‘유리거울의 시편들’에 나오는 성경 인물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인물시라고 해서 역사적 기록을 다시 기억하고 서사하는 수준이 아니죠. 성경의 기록과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저는 두 개의 시간을 가지고 시를 썼습니다. 두 개의 시간 하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의미하는데, 그걸 넘어서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인물에 대해 문학적인 서사를 할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우리의 삶 속에 영혼의 감각으로 형상화하고 이미지화 하였습니다. 다시 내 영혼의 유리거울에 비추고 내 삶에 교훈을 하고 내 삶을 되살아나게 한 것입니다. 때로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는(딤후:3:16) 일을 하게 한 것이죠.
‘아담’이라는 시가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내 안에 유리거울 하나 빛났지 / 당신이 나를 흙으로 빚고 /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 / 그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 / 산짐승과 날짐승들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의 호명 / 태양빛도 숨죽이던 날 / 하와의 하얀 손바닥 위에서 빛나던 / 빨간 선악과의 미혹 / 금단의 열매를 깨물었을 때 / 내 안에 유리거울이 깨지고 / 깨진 유리 파편 위로 / 검은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 에덴을 잃어버린 후 / 지금도 소나기가 내리면 / 슬픈 소년이 된다.” 우리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형상을 유리거울로, 아담의 범죄와 타락을 깨진 유리거울 파편 위로 내리는 검은 소나기로 이미지화하였고, “지금도 소나기가 내리면 / 슬픈 소년이 된다”는 묘사를 통해 성경 인물의 현재적 메시지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아담으로 시작한 성경 인물시가 95편이 되었습니다. 세계 역사, 2천 년 기독교 역사에 성경의 특정 인물 몇 편을 시로 쓴 분은 있을지 모르지만 95편을 쓴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순간순간 간절하게 내뱉은 숨결의 기도요, 문학적 감성과 영혼의 영감이 조화를 이루며 찾아온 시적 언어의 발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한 편, 한 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깊은 사유와 순수 서정의 우물 속에서 건져 올린 시들을 써 나갈 것입니다. ‘유리거울의 시편들’을 통해 두 개의 시간 속에서 현존하는 성경 인물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나고 우리 가슴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