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목사의 ‘논쟁으로 읽는 요한계시록②’ > 칼럼 > CDN Christian Daily News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칼럼

HOME  >  오피니언  >  칼럼

김진호 목사의 ‘논쟁으로 읽는 요한계시록②’
일곱 인 재앙과 ‘흰 말 탄 자’

씨디엔 기자
작성일 2026-02-28 13:56

본문

재앙의 시작인가, 복음의 전진인가

| 김진호 목사

요한계시록 6장은 많은 성도들에게 종말의 공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본문입니다. 인이 하나씩 떼어질 때마다 등장하는 네 말과 재앙의 장면은 강렬합니다. 전쟁과 기근, 사망의 이미지는 계시록을 소망의 책이 아니라 두려움의 책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특히 첫 번째 인이 떼어질 때 등장하는 흰 말 탄 자는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어떤 해석은 이 인물을 곧바로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며, 계시록 6장을 전면적인 재앙의 서막으로 이해합니다. 이 경우 종말은 피해야 할 재앙의 시간표가 되고, 성도는 본문을 읽는 순간부터 불안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사 속에서 이 본문은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읽혀 온 것이 아닙니다. 4대 학파는 각각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계시록 6장을 해석해 왔습니다.

과거주의는 이 장면을 초대교회가 겪었던 환난과 박해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했습니다. 역사주의는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인간 사회의 혼란과 전쟁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미래주의는 장차 다가올 실제 재앙의 시작으로 읽었으며, 이상주의는 특정 시점을 넘어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영적 원리로 이해했습니다.

이처럼 해석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본문 어디에도 흰 말 탄 자를 특정 인물로 단정하라는 명령은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록 6장은 인이 떼어지는 장면 한가운데에서도 어린양이 그 인을 떼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보여 줍니다. 재앙의 그림보다 먼저 등장하는 존재는 어린양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됩니다계시록 6장은 재앙의 시간표를 주기 위한 장인가, 아니면 환난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 주기 위한 장인가?

한국교회의 종말론은 종종 이 장을 두려움의 본문으로 읽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를 향해 이 말씀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본문을 다르게 읽어야 합니다. 이 장은 공포를 계산하라고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라고 주어진 말씀입니다.

흰 말 탄 자를 둘러싼 논쟁은 필요합니다. 해석은 분별을 돕습니다. 그러나 논쟁이 목적이 될 때, 본문의 중심은 흐려집니다. 4대 학파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 차이가 성도의 소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묻습니다우리는 재앙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어린양을 보고 있는가종말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복스러운 소망은 재앙이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재앙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또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멈추지 않는다는 데서 옵니다.

기사 공유하기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