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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청년 조용기 영화”를 보고

씨디엔 기자
작성일 2026-09-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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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 오후에 동백CGV에서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함께 청년 조용기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 영화를 제작한 권혁만 감독님 말씀처럼 저는 조용기 목사님의 소천을 앞두고 KBS에 조용기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을 제안했었거든요. 조 목사님이 천국에 가실 걸 미리 예측하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요청한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불교의 성철 스님이 타계를 했을 때 몇 부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방영한 적이 있었거든요. 저는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이 소천 하시기 전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또 김준곤 목사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직계 제자가 아니었지만, 그분의 제자들이 엄두를 못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지상파 방송 사장에게 부탁해서 8시 뉴스에 아주 길게 보도를 하도록 했습니다마는. 그런데 조용기 목사님 소천 5주년을 맞아 마침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청년 조용기는 조용기 목사님이 고등학생 시절 폐병 환자가 되어 피를 토하며 쓴 일기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폐병으로 인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며 무신론자가 되어 한탄을 합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속에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 폐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완치되게 됩니다. 그 후로 조용기 목사님은 순복음신학교에 진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서울 대조동에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하여 가난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앉은뱅이 소년이 일어나고 각종 환자들이 고침을 받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을 지나 마침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대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기조로 한 절대 희망의 메시지와 성령 사역, 셀 조직, 전도를 통해 세계 최대의 단일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교회 부흥 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와 구제 사역에도 위대한 궤적을 남기며 세계에 대한민국을 가장 많이 알린 민간 외교관으로도 쓰임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분에게도 빛과 그림자가 있죠. 그러나 그 그림자는 조 목사님 자신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자녀 혹은 가정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조 목사님은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위대한 목회자요 전도자요 병을 고치는 치유 사역자였습니다.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인도를 가면 100만 명, 150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 나라의 대통령이 집회에 참석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복음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목사님도 가족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한창 성장할 때 아버지 역할을 거의 못 해줬거든요. 영화 중 조 목사님의 차남이자 국민일보 회장을 맡고 계신 조민제 회장님이 눈시울을 적시며 이런 제안을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사역에 걸림돌이 된다면 가족을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그러자 조 목사님이 피식 웃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내가 어떻게 가족을 버릴 수 있겠느냐.” 결국 그 일로 조 목사님은 대법원에서 배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조 목사님은 설교를 마치고 온 성도들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참회를 하였습니다. 조 목사님의 참회 앞에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눈물을 닦았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영화는 참으로 균형 있게 만들었습니다. 조 목사님의 공()뿐만 아니라 과(,) 빛과 그림자까지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 조용기 목사님은 저의 큰 바위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조용기 목사님을 만나 뵐 기회가 많았습니다. 조 목사님의 사무실에 가면 제가 쓴 생명나무라고 하는 책을 읽고 또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설교할 때 생명나무, 선악과를 사용해도 되겠느냐?” “얼마든지 사용하십시오. 하늘 아래 새것이 어디 있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분이 생명나무와 선악과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신 것을 봤습니다. 그분은 갈 때마다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전 교인들이 통성기도를 할 때 제 앞으로 오셔서 제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 달라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손을 내리고 그 어르신을 포옹하며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 교회를 다니면서 너희들 봐라. 소강석 목사가 내 직계 제자는 아니지만 너희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두고 봐라. 앞으로 소강석 목사가 한국교회를 섬기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앞으로 소 목사가 한국교회를 섬길 때 진심으로 도와주기를 바란다.”

세월이 흘러 그는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시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그분의 장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45일 동안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숙박을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입관예배에 참석하여 기도를 하였고 발인예배 때는 조시를 낭독했습니다. 하관예배까지 참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1년에 한 번씩 꽃다발을 들고 그분이 잠들어 계시는 묘소까지 찾아가 헌화를 합니다. 타이밍이 좀 늦기는 하였지만 조 목사님의 소천 5주기를 맞아 청년 조용기라는 영화를 만드신 권혁만 감독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앞으로 영화를 많이 관람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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