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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지 않던 소년, 무릎 꿇는 목사가 되다
안동 종가에서 갈멜산 기도굴까지, 기도와 말씀으로 돌아온 한 사람의 여정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03-03 18:38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19> 프레이워드(Pray Word) 김병일 목사

경북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난 소년 김병일은 어릴 적부터 유교의 공기를 마시며 자랐다. 종중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도련님 오셨습니까라는 말을 들으면, 어린 마음에도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뿌리 깊은 가문의 전통은 분명 자부심이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은 기억은 따로 있었다. 방학이면 집에 머물던 외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외할머니는 권사였다. 부엌일을 하면서도, 마루에 앉아서도, 입가에는 늘 찬송이 흘렀다. “내 진정 사모하는” 88장 찬송가가 소년의 귓가를 맴돌았다. 부모는 정미소를 운영하며 농사까지 지어야 했기에 늘 분주했고, 신앙은 자녀 교육의 한 방법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신앙은 달랐다.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훈계가 아니라 눈빛이었다. 소년의 가슴에 스며든 첫 복음은 교리가 아니라 찬송의 멜로디였다.

집안의 제사 자리에서 그는 절하지 않았다. 유교 집안에서 그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의 꾸중이 이어졌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엄했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에는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 확신이 먼저였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 고백은 누가 가르쳐 준 문장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찬송과 기도 속에서 자라난 믿음의 뿌리였다. 절을 하지 않겠다는 결단은 어린아이의 고집이 아니라, 이미 중심을 잡은 신앙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이 곧장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를 지나며 교회와 멀어졌고, 세상의 바람은 생각보다 거셌다. 그렇게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스스로 주인처럼 살겠다고 나선 길은 반복되는 실패로 돌아왔다. 취직을 하면 회사가 기울었고, 자리를 잡는 듯하면 부서가 사라졌다. 열 번 가까이 이어진 좌절은 마음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다른 종교에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는 그대로였다. 그는 그 시간을 탕자의 시간이라 말한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 마음이 얼마나 외로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

2007,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 섰다. 신학을 시작하며 마음 한 켠에 오래 묻어 두었던 부르심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은 2009년 안양 갈멜산기도원의 기도굴에서 찾아왔다. 3일 금식의 마지막 날, 요한복음 1010절이 마음 깊이 울렸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던 그는 조용히 고백했다. “네 하나님, 알겠습니다.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날의 고백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결심이 아니라, 스스로 도망칠 수 없는 순종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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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목사 안수를 받고, 2014년 첫 개척을 시작했다. 교회 이전과 외부 사역, 협력 사역이 이어졌다. 한때 IT와 멀티미디어 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쓰임을 받았다. 웹선교사의 길이 열렸고, 시대는 미디어와 복음을 연결하라고 등을 밀었다. 그렇게 기도와 말씀을 중심에 두는 사역이 점점 또렷해졌다.

20235, 그는 모든민족기도원을 열었다. 오래전 산기도 중 받았던 감동이 다시 떠올랐다. “교회보다 기도원이 더 말씀 중심이어야 한다.” 은사와 열정이 앞서는 시대에, 그는 기도원부터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요한계시록 312절의 약속을 붙들고, 민족과 나라를 축복하는 기도의 자리를 세웠다. 그의 사역은 점점 한 교회에서 여러 민족으로 넓어졌다.

그리고 2025, 사도행전 64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프레이워드(Pray Word)’를 시작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그는 말한다. 교회가 더 조직화되고, 프로그램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십자가의 도는 희미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지도자부터 깨어야 한다고. 프레이워드는 단순한 웹매거진이 아니라, 다시 기도와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외침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복음은 여전히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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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앙 여정에는 다섯 단어가 남아 있다. 순종, 인내, 충성, 복종, 사랑. 그 길을 걷는 동안 사모로 사시다가 천국에 가신 이모의 말이 마음에 새겨졌다. “병일아, 주의 종은 마음 밭이 좋아야 한단다.” 수많은 상황과 오해, 핍박 속에서도 그 말은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등불이 되었다. 결국 예수께서도 같은 길을 걸으셨음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섰다.

자녀들에게 그는 늘 이렇게 말해 왔다. “급할수록 천천히.” “기다려야 큰 것을 얻는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시계로 움직인다고. 조급함이 아니라 인내로, 소리 높임이 아니라 무릎 꿇음으로 사는 길을 보여주고 싶다고.

안동의 제사 자리에서 절하지 않던 소년은 이제 누구보다 깊이 무릎 꿇는 목사가 되었다. 가문의 전통보다 복음의 중심을 택했던 그 선택은, 방황의 시간을 지나 기도와 말씀으로 이어졌다. 그의 삶은 거창한 성공담이라기보다, 결국 돌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돌아옴이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용기가 되기를 그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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