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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목사, 부모의 신앙을 ‘나눔’으로 이어온 30년 청소년 사역의 길
굿판에서의 주기도문, 농촌에서의 ‘보이지 않는 목회’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01-13 11:05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13, 김창호 목사

김창호 목사의 신앙 이야기는 설교단이 아니라 한 굿판에서 시작된다.

외가 친척을 따라갔던 어느 날, 집 안에는 무당이 들어와 굿을 하고 있었다. 어린 김창호는 방 한쪽에 서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는 그 장면을 이렇게 기억한다. “뭘 알았겠어요. 그냥 들은 대로 기도했죠.”

그러나 그 짧은 기도는 그의 인생에 오래 남았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작고 조용한 기도였지만, 그날의 경험은 훗날 청소년과 장애인, 그리고 농촌 현장을 향해 이어지는 신앙 여정의 첫 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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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신앙, ‘교회 중심나눔으로 새겨지다

김창호 목사의 신앙은 가정에서 형성됐다. 아버지가 먼저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어머니는 재혼 후 교회 가까운 환경으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는 아버지는 배움은 많지 않았지만 교회를 삶의 중심에 두셨고, 성전을 꾸미는 일도 손수 하셨다고 회상했다.

가난했던 농촌의 일상 속에서도 아버지는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 명절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였고, 종갓집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도 있었다. 김 목사는 풍족해서가 아니라,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사역 전반에 흐르는 가치가 됐다.

신앙과 전통의 갈등도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까지 제사를 지내던 환경 속에서 흔들림을 겪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직접 예배를 인도하며 신앙의 자리를 붙들었다. 김 목사는 이 시기를 돌아보며 어린 시절의 신앙이 평생을 이끈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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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서 시작된 부르심, “청소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김 목사의 사역 방향은 청소년 현장에서 분명해졌다. 그는 19961월부터 본격적인 청소년 사역을 시작했다. 소년원 사역에 참여하며 주일마다 찬양을 인도하고, 일정 기간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 시간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마음에 자리 잡은 결단이 있었다. 청소년을 위해, 찬양사역을 통해 섬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목회보다 문화사역을 먼저 경험했다. 공연과 연극, 지역 문화행사, 이웃 돕기 모금 등 다양한 시도를 거치며 얻은 결론은 단순했다. “아이들의 문제는 결국 가정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깨달음이었다.

 장애인 돌봄과 상담 사역, 현장에서 배운 복음의 언어

김창호 목사의 사역에는 장애인 공동체가 중요한 축으로 자리한다. 그는 총각 시절부터 관련 사역에 참여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논산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아내와 함께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술·음악·웃음치료 등을 일주일에 한 번씩, 3년간 꾸준히 이어갔다.

괴산으로 내려간 이후에도 장애인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찬양을 훈련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청년이 방송실 봉사와 찬양 기도를 감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기다림과 교육의 시간이었다. 그는 이를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보호관찰소 상담위원으로 20년 넘게 활동해 왔다. 시대는 변했지만, 가정의 돌봄이 무너질 때 아이들이 가장 먼저 흔들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청소년 사역은 프로그램보다 함께 있어주는 시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러한 사역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독거노인 돌봄과 농촌목회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콘서트 사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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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촌 선교사다보이지 않는 일이 목회의 본질이 되다

2010년 김 목사는 괴산으로 향했다. 계획된 이동이라기보다, 아이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자는 제안에 응답한 선택이었다. 집과 예배당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공동체는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겨야 했고, 2016년에는 임대 문제로 다시 이전을 해야 했다.

그는 농촌 목회를 보이지 않는 일의 연속이라고 정의한다. 장례를 돕고, 관계를 잇고,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견디는 일이 목회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김 목사는 농촌에서는 특히 목사의 역할이 더 드러나지 않는다그러나 그 자리에서 복음이 가장 깊이 스며든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창호 목사는 신앙전수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했다.

보여주지 않으면 신앙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는 화려한 말보다 삶의 선택을 강조했다. 엄하게 자녀를 훈육했던 시간, 가정예배를 놓지 않기 위해 애썼던 밤들, 두 사람만 남아도 기도회를 이어갔던 일상들. 그 모든 시간이 다음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언어라고 믿는다.

굿판에서의 주기도문으로 시작된 그의 신앙은 청소년의 현장과 돌봄의 자리, 그리고 농촌의 보이지 않는 목회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김창호 목사가 말하는 신앙의 전수는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말로 가르치는 신앙이 아니라, 살아내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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