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시작된 신앙, 삶의 루틴으로 이어지다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14, 조성복 목사편
본문
조성복의 신앙은 한 사람의 결단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신앙은 어머니의 기도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변화로 증명되었고, 결국 자신의 삶의 루틴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루틴은 지금, 자녀들의 기억 속에서 또 다른 신앙의 씨앗이 되고 있다.
어머니의 손, 신앙의 첫 기억
그의 가장 오래된 신앙의 기억은 설교가 아니라 손의 온도다.
어머니는 늘 새벽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차갑고 두툼한 손으로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손은 늘 같은 자리에 놓였다. 기도는 그렇게 말보다 먼저, 삶의 언어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신앙이 없었다. 어머니의 교회 출석을 반대했고, 때로는 핍박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교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아프고 상처투성이가 된 날에도, 그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신앙의 전환점은 조성복이 스물한 살 되던 해 찾아왔다. 어머니의 눈병이 심해졌고, 기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호자로 동행한 아버지는 그곳에서 담배를 끊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성복은 그 장면을 이렇게 기억한다.
“아버지는 의지로 살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었고, 약 10년의 신앙생활 끝에 생을 마쳤다. 임종을 지키던 순간, 그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버지, 천국 갈 수 있겠어요?” 아버지는 고개마저 끄덕일 힘이 없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이라 겨우 숨 내쉬듯이 “어~”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아버지의 신앙을 너무 쉽게 판단해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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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내 아들이다” 중학교 3학년, 기도의 문이 열리다
조성복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때는 중학교 3학년 여름수련회였다. 그는 기도에 서툴렀고,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몰랐다. 또래 아이가 방언을 받았다는 간증을 할 때, 그는 부러움보다 좌절을 느꼈다.
‘나는 왜 아무것도 안 되는 걸까.’ 눈물로 기도하던 그 순간, 그는 분명한 감동을 경험했다.
“기도하면 되는데 왜 못하느냐. 너도 내 아들이다.”
그날 그는 시간을 잊은 채 기도했다. 방언이 없어도 괜찮았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확신만으로 충분했다. 그 이후 그의 성격은 달라졌다. 내성적이던 그는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묻게 되었다.
소명은 한 번에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여름성회에서 그는 “주의 종으로 살 사람 손을 들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그 기억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훗날 그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마 그때,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스물여섯이 되었을 때, 그는 새벽기도 중 다시 부르심을 받았다. ‘사람을 살리는 일, 그중에서도 영혼을 살리는 일이 가장 귀하다.’
의사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직장과 가정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그는 결국 목회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곧장 신학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른둘이 되어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그때 그는 이미 가장이었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우유 배달을 하고, 교회 사역을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학비와 생계는 늘 벼랑 끝에 있었지만, 그는 수없이 경험했다. 꼭 필요한 만큼이 채워지는 하나님의 공급을.
“병원비 5만 원이 없던 날, 기도 후 통장에 정확히 그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조성복의 신앙은 화려한 체험보다 반복되는 루틴에 가까웠다. 골방기도, 새벽기도, 말씀 묵상. 그가 붙잡아온 말씀은 빌립보서 4장 6~7절이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그는 말한다. 상황이 먼저 바뀐 적은 많지 않았다고. 대신 마음이 먼저 바뀌었다고. 이 신앙은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전수되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좋아서”였다. 딸은 장학금 신청서에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의 하루 루틴을 보며, 목회자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준비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설교보다 강한 신앙 교육이 되었다.
신앙 전수란 무엇인가
조성복은 신앙 전수를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 이걸 말로 가르치려 하면 남지 않습니다. 삶으로 반복하면, 남습니다.”
그의 신앙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어머니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변화로, 그리고 자신의 하루를 통해. 신앙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음 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