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다”
포기했던 길에서 다시 부르심을 붙든 한 목회자의 이야기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4> 익산 은평교회 박진서 목사
성도는 두 명뿐이었다. 교회라 부르기엔 작았고, 공동체라 하기에도 조용한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여섯 식구의 가정이 함께 있었다. 목회자의 가족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실패처럼 보일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에게는 다시 시작된 자리였다.
그의 삶은 처음부터 신앙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외가에는 불교적 전통이 있었고, 집안에는 예배 대신 제사가 반복되었다. 예수라는 이름은 낯선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따뜻함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날이 많았고, 그 밤이면 집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누나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와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어린 마음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 반복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상실은 갑작스러웠고, 삶은 더 빠르게 흔들렸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또 하나의 사실이 드러났다. 아버지에게 또 다른 가정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어린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을 남겼다.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감정 속에서 그는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그의 삶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친구의 권유로 처음 교회를 찾았다.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 참석한 수련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복음을 깊이 듣게 되었다. 그 시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으로 남았다. 감정이 앞선 것이 아니라, 확신이 먼저 찾아왔다. 그는 그 자리에서 목회자가 되겠다는 결단을 했다.
그러나 결단이 곧 길이 되지는 않았다. 스무 살에 신학대학에 진학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신앙으로 생각했던 목회와 실제 신학의 간격은 생각보다 컸다. 그는 혼란 속에서 결국 학교를 떠났다. 이후의 시간은 평범한 삶을 향해 가는 듯 보였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세상을 경험할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계속되었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문장이 들려왔다.
“목회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그 문장은 선택을 다시 요구했다. 그는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28세에 결혼과 함께 신학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경제적 여건은 부족했고, 학업은 길어졌다. 보통 6년이면 마칠 과정을 10년에 걸쳐 이어가야 했다. 그 시간은 준비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버텨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후 여러 지역을 거치며 사역을 경험했고, 결국 한 교회로 부름을 받았다. 처음 만난 익산 샬롬교회의 모습은 단순했다. 고등학생 두 명이 전부였다. 그 두 명이 교회의 시작이자 전부였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교회는 재정적으로 거의 기반이 없었다. 매달 돌아오는 월세와 공과금, 생활비는 늘 부담으로 다가왔다. 사역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고민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시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 먼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사역에 집중하며 놓치고 있었던 가족과의 관계가 다시 이어졌다.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던 균열이 조금씩 메워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교회로 이어졌다.
두 명의 성도와 함께 드리는 예배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 다른 깊이가 있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공동체는 서서히 만들어져 갔다. 그 두 학생은 단순한 성도가 아니라 동역자였다. 때로는 제자였고, 때로는 그의 목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교회는 조금씩 지역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는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만났고, 관계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교회는 프로그램보다 관계를 선택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삶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그는 같은 기준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정체성이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삶이 바뀐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시작은 작았다. 지금도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분명한 흐름이 있다. 도망쳤던 길에서 다시 돌아왔고, 가장 작은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 세워갔다.
그에게 목회는 무엇을 이루는 일이기보다, 무엇을 붙드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가 붙들고 있는 것은 처음 그를 다시 불러 세웠던 그 한 문장이다.
“목회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