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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1편)
어머니의 기도에서 시작된 신앙, 재개발의 위기를 넘어 다시 흐르기까지

유현우 기자
작성일 2026-03-24 23:44

본문

<대한민국 기독교 인물 열전 25> 대전성지교회 심상효 목사 

프롤로그

대전성지교회는 한때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 서 있었다.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과 신앙이 쌓인 공간이었지만, 그 기반이 흔들리는 순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긴 시간의 갈등과 법적 과정을 지나 결국 교회는 새로운 성전을 세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건축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심상효 목사는 2016년 한 간증에서 환란이 많았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의 고백은 이후 더 큰 현실 속에서 실제가 됐다. 재개발이라는 시련은 한 목회의 방향을 다시 묻는 사건이었고, 동시에 그의 신앙이 검증되는 시간이었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흐름이 드러난다. 무너진 가정에서 시작된 기도, 소명을 피해가던 시간, 그리고 결국 순종으로 이어진 선택. 그 신앙은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교회를 세우고, 다시 다른 교회를 돕는 길로 확장되었다.

이 글은 한 목회자의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어떻게 신앙을 형성하고, 그것이 현실의 시련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결국 다음 세대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부모의 기도, 신앙의 뿌리가 되다

심상효 목사의 신앙은 평온한 환경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은 집안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현실이 일상이었다. 집은 쉼의 공간이라기보다 버텨야 하는 자리였고, 미래는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 무게는 단순한 곤궁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일곱 식구가 다 연탄가스 맡고 죽자고 탄식할 만큼 집안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죽을 맘으로 살자고 말했다. 심상효 목사는 훗날 그 순간을 떠올리며, 바로 그 나락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어머니를 찾아오셨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그 무너짐의 자리에서 한 가지가 시작되고 있었다. 기도였다. 어머니는 상황을 탓하기보다 하나님을 붙들었다. 현실은 곧바로 바뀌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삶은 흔들리지 않았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교회로 향했고, 돌아와서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기도는 특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는 반복 속에서 점점 더 깊어졌다.

그에게 신앙의 첫 기억은 설교나 교리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뒷모습이었다. 말보다 먼저 남은 것은 장면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 꾸준함은 어린 마음에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지속이며, 환경이 아니라 태도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신앙이 개인의 인식에서 실제 삶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가족예배를 통해서였다. 어머니의 주도로 시작된 가족예배는 거창하지 않았다. 짧은 말씀과 간결한 기도였지만, 그 시간은 가정 안에 이전에는 없던 질서를 만들어냈다. 혼란 속에 있던 집안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신앙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됐다. 가족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정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였고, 그 안에서 그는 신앙을 현실로 경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아버지의 변화였다. 처음부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 아버지는 삶의 과정을 지나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급격하지 않았지만 분명했고, 오히려 그 점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그 모습을 통해 신앙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우게 된다. 신앙은 완성된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 가는 사람이 붙드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은 이상적인 세계 속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사람을 바꾸시는 분이었다.

그에게 오래 남은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교육전도사 시절, 찬양 인도 중 안경알이 빠지는 일이 있었다. 기억이 온전치 않았던 할머니가 이를 아범 눈알이 빠져서 며느리가 교회 갔어라고 전하는 바람에 집안은 한바탕 소동이 되었다. 아버지는 놀라 뛰어나왔지만, 어머니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유를 묻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눈알이 빠졌으면 빠진 대로 사용하시겠지.” 그는 그날 어머니의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보았다고 회고한다.

돌이켜보면 그의 신앙은 한 순간의 결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무너진 가정에서 시작된 기도, 어머니의 꾸준한 신앙, 가족예배를 통해 형성된 질서, 그리고 삶 속에서 드러난 믿음의 장면들까지. 이 모든 것이 겹겹이 쌓이며 그의 삶의 기초가 되었고, 그 기초는 이후 어떤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되었다.

소명과 현실 사이에서 끝내 택한 길

신앙의 토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곧바로 목회의 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심상효 목사에게 목회는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 길 앞에서 오랜 시간 머뭇거렸다. 신앙은 있었지만, 그것을 삶 전체로 감당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현실은 분명했다. 가정의 책임, 생계의 문제, 앞으로의 삶. 목회의 길은 확신 없이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결정이었다. 그는 쉽게 부르심이라는 말로 자신을 설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 뒤에 숨어 버리지 않고, 정말 이 길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오래 붙들고 씨름했다. 그 갈등은 단순한 고민이 아니라 삶 전체를 흔드는 문제였다.

그는 훗날 설교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던지시는 질문이 있다고 말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이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고,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구했으며, 야곱이 축복을 구했던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삶의 진짜 소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 또한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고 회고한다. 목회의 길은 막연한 열심으로 들어서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다른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이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점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 앞에 서게 됐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결혼 이후 찾아왔다. 더 이상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고, 선택은 곧 책임이 되었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결국 신학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 선택은 결코 이상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공부를 병행해야 했고, 안정된 기반도 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신학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과 병행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그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경건이며,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공부보다는 경건에 더 치우쳤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자신의 부족을 탓하기보다, 어디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 더 깊이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자주 야곱의 삶을 떠올린다. 설교에서 그는 돈을 번 것과 복을 받은 것은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이 가진 형편이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바꾸어 가시느냐는 것이었다. 야곱이 기도 가운데 두려움과 계산적인 성품을 넘어섰듯, 자신 또한 부족함을 안은 채 하나님 앞에서 바뀌어 가는 길을 택했다고 그는 해석한다.

그 선택은 그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기도는 더 이상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통은 일상이 되었다. 때로는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도 기도를 멈출 수 없었고, 때로는 침묵의 훈련을 통해 자신을 다스려야 했다. 그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며, 신앙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체화해 나갔다.

그 과정은 외롭고 고된 시간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현실적인 안정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그는 한 가지 확신을 얻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타협할 수 없는 본질이라는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결단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갈등 속에서 시작된 선택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결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반복된 결단이 그의 삶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그 방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는 삶이었다. 그것이 그의 목회를 만들었고, 이후 어떤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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