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맞은 화양동교회, 희년감사예배 및 임직식 거행
예장대신교단 대표하는 주요 교회로 한국교회 성장기 함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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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으로 다음세대 목회자 양성의 사명 감당
예장대신교단을 대표하는 주요 교회였던 화양동교회(황원찬 목사)가 교회설립 50주년을 맞았다.
대신교단의 신학교인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한 황만재 목사에 의해 1972년 12월 3일 화양동교회가 시작되어 반세기 동안 한국교회의 성장기를 함께 했다.
황원찬 목사는 “믿음의 선배로 신앙의 본을 보이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희생하며 교회를 이끌어 오신 설립자님을 기억한다”면서 “많은 분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교회가 있을 수 있었다. 특히 다음세대 목회자 양성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이 시대를 섬기는 종들을 배출하는데 힘쓰게 하셨다”고 회고했다.
황 목사는 “선한 영향력을 바라며 성령으로 하나 되어 뜻을 따라 새로운 비전을 꿈꾸고 있다”며 “주의 말씀 순종하며 이웃을 섬기며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12월 3일 화양동교회에서 열린 1부 희년감사예배는 윤재훈 목사(라오스선교사)의 대표기도에 이어 이윤호 목사(도신교회)가 ‘성전 문지기’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화양동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던 이윤호 목사는 교회를 통해 받은 은혜와 감동을 회고했다. 이 목사는 “희년의 주제는 자유, 곧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살리시고 건지시고 인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고 비전을 이루게 하셨다”며 “믿음이 회복되고 기도가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고 헌신과 주님을 향한 열정이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며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주님의 화양동교회가 될 줄 믿는다”고 전했다. 또한 “인간의 가치는 사명에 있다. 세상에서 성공을 이루려 하지만 우리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사명이다”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사는 것이 세상이 부귀영화보다 복되다”고 강조했다.
2부 임직식에서는 △장로장립 강민철 현상일 △안수집사 맹현국 박희권 이상진 △권사취임 김계숙 김태은 백순례 이복순 표옥매 황옥연 등이 임직을 받고 교회와 성도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박재봉 목사(대학정원교회) 이승룡 목사(주를향한마음교회) 양인열 목사(서평택새중앙교회) 박성수 목사(주영광교회) 최경희 전도사(우리하나교회)가 등단해 축사와 권면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재봉 목사는 “화양동교회는 한국교회에서 50년을 한 결 같이 성장하고 한 자리를 지켜왔다”며 “또 1세대 교회사역 시기에 이어 2세대 신학교 사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립자의 희생과 황원찬 목사의 노고, 화양동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관심이 없었다면 학교는 존재할 수 없었다”며 “비전을 제시하고 협력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축하를 전한다”고 말했다.
임직자들에게 이승룡 목사는 “신앙의 명문 가문이 됨을 축하한다”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일해야 한다. 행복한 일꾼으로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충성하는 임직자들이 되길바란다”고 당부했고, 양인열 목사는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며 “섬김의 겸손으로 본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설립자 황만재 목사와 화양동교회의 일대기
1972년 12월 3일 황만재 목사에 의해 설립된 화양동교회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여 개척 1년 만에 주일학교 어린이 예배 100명이 참석하고, 이듬해인 1974년 장년 출석 140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1979년 예배당 부지 구입 및 건축 시공하고, 1981년 신축예배당 준공 봉헌예배를 드렸다. 당시 장년 출석 600명, 주일학교 400명, 학생회 100명 출석 등 총 1000명 출석하며 한국교회를 섬기고 세계선교에 일익을 감당해 왔다.
고 황만재 목사는 지난 1931년 12월 5일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해 고등학교 2학년때 장성중앙교회(예장통합측)에서 최연소 서리집사로 임직했다.
이후 6.25 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황 목사는 연일 몰아치는 전쟁의 포화 속에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서원을 하고, 휴전 이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1954년 서울 남산 대한신학교를 들어갔으며, 졸업 후에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며 파독 광부 및 간호사 한인회장까지 역임했다.
귀국 후 1972년 12월 지금의 화양동교회를 개척한 황 목사는 대신교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동노회장, 북노회장 등을 지내다, 지난 1995년에는 교단 총회장에까지 오른다.
그러던 중 황 목사는 지난 1996년 생전의 최대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학교법인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당시 대한신대는 신학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대학원대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이후 황 목사는 지난 2000년 11월 화양동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원로에 추대됐으며, 2006년 10월에는 대한신대 이사장직도 내려놓고 모든 일선에서 은퇴하고, 2017년 1월 11일 차남 황원진 목사가 개척한 선한 사마리아인교회를 섬기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