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 하나로 여기까지… 나의 나 된 것은 다 주님 은혜”
방송인 김지선 집사, 호남전도대회서 36년 방송·4남매 양육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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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집이었다. 공부도, 노래도, 그림도. 내세울 것 없던 소녀는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발길이 이끄는 대로 교회 문을 밀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들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말을. 그 한 마디가 이후 36년 방송 인생의 뿌리가 됐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국 124주년을 기념하는 호남지역 전도선교대회가 5월 25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가운데, 방송인 김지선 집사가 신앙 간증을 통해 청중과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인 김 집사는 유교적 가풍과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다. 가족의 관심 밖에 놓인 외로움을 안고 스스로 찾아간 교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했다.
“집에서는 내가 들어오는지 나가는지도 관심이 없었는데, 교회에서는 공부를 못해도,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아무런 재주가 없어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준다는 거예요. 그게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성적표에 없는 재주 하나, 하나님의 설계
김 집사에게 하나님이 주신 단 하나의 재능은 ‘흉내 내기’였다. 고등학교 시절 북한 방송 아나운서의 말투를 따라 하며 교실 앞에 불려나가기를 반복했고,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북한 사투리로 주목을 받으면서 개그맨 시험 도전으로 이어졌다. 혼자서는 대본을 쓸 수 없었던 그에게 선배 양원경 씨가 붙어 함께 무대를 꾸몄고, 김 집사는 1990년 KBS 코미디 페스티벌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방송에 입문했다.
“대본을 써준 선배는 그해 장렬히 전사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개그맨으로 만들려고 그 선배를 붙여주셨다가, 다음 해에 다시 불러주셨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김 집사는 자신의 삶을 ‘젓가락’에 빗댔다. “하나님이 저를 젓가락으로 만드셨는데 맨날 숟가락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숟가락은 면을 못 뜨잖아요.”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이 있으니 옆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쓰임받는 삶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방송 활동과 함께 4남매를 낳아 ‘다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 집사는 자녀 양육의 고충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둘째 아들은 사춘기를 거치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고, 얼굴 17곳에 피어싱을 했다. 속이 타들어 가는 시간이 이어졌다.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니 선우용녀 씨는 “그렇게 속 썩이던 아이들이 나중에 효자 된다”며 지금은 믿어줄 때라고 조언했다.
“나이트클럽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교회에 앉아 있잖아요. 그러면 주님 눈길이 한 번 더 가지 않겠어요?” 김 집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눈물의 세월 끝에 아들은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 진학했고, 래퍼로 활동하며 첫 수익금을 부모에게 나눠줬다. “자녀 양육에서 세 가지면 됩니다.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기도하는 것. 그러면 유턴해서 옵니다.”
김 집사는 간증을 마무리하며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을 인용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듯,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산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자녀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이끄신 주님이 내 아이들도 책임지십니다.”
전주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운 청중 앞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간결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존재입니다. 믿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뿐입니다.”
흉내 하나로 방송에 들어서고, 눈물로 자녀를 키우고, 그 모든 시간 나무를 떠나지 않았기에 살아남은 가지. 36년의 이야기가 그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순간이었다.
